[2023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가장 낮은 곳의 말言’
[2023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가장 낮은 곳의 말言’
  • 함종대 씨
  • 승인 2023.01.01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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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의 말言

함종대

 

발톱은 발의 말이다

발은 한순간도 표현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나는 낮은 곳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짓눌리거나 압박받는 곳에서 나오는 언어는 어감이 딱딱하다

그렇다고 낮은 곳 아우성이 다 각질은 아니어서

옥죈 것을 벗겨 어루만지면 이내 호응한다

늦은 퇴근 후 양말을 벗으면

탈진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발가락들이 하는 말을 더럽다고 외면한 날이 많았다

안으로 삼킨 말이 발등으로 통통 부어오른 날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에게 내미는 말을

나는 야멸차게 잘라내며 살았구나

오늘은 발을 개울에 데려간다

물은 지금 머무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라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아는 양

같은 족을 만난 듯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발이 내어놓는 울음인지 물의 손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이 봄나무에 물오르듯 올라온다

머리를 낮게 숙여 두 손으로 발을 잡아본다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는지 볼까지 흠뻑 젖었다

개울이 발의 울음소리까지 보듬는 걸 보면

오래전부터 산의 발등이나

나무들의 발가락을 어루만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개울도 울컥거릴 때가 있어 강에 발을 담근다

바다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 하구를 보듬는다

장사가 어려워 가게를 폐업하던 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뭍의 등을 철썩철썩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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