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 몰린 사람의 떨림, 뚱딴지꽃
삶의 끝에 몰린 사람의 떨림, 뚱딴지꽃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10.13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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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란 어린 시절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어서 편을 함께하던 내 팀, 짝꿍이나 동지를 의미한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등 놀이를 할 때 같은 편을 말하며 딱지나 구슬 등도 공동 관리하는 한 팀이 ‘깐부’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할아버지가 성기훈에게 구슬치기 게임에서 ‘깐부’를 하자고 제안한다. 빚에 쫓기는 수백 명의 사람이 뛰어든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456억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게임은 사람 내면의 감정을 묘하게 끌어내는 신기하고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바깥세상에서 불평등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며 평등하게 싸울 수 있는 원칙이 있는 데스게임이다. 분명 벼랑 끝에 매달려 사는 자에게는 자극적인 묘미가 있었다.

삶과 죽음의 무시무시한 떨림이 심장을 멈출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그런가 하면 궁지에 몰렸다가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절박감이 자극했다. 승자와 패자와의 결정, 아니 산 자와 죽은 자를 판가름하는 순간에 인간은 최악의 비열한 존재가 되는 모습에서 공유할 동질감을 느끼는 울부짖음이 작동했다. 상대방을 속이는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 줄 때 그들의 아귀다툼 소리와 살인적인 매서운 눈초리가 화살처럼 날아와 정수리에 꽂힐 것 같은 두려움도 덮쳤다.

학창 시절 항상 양보와 배려로 깐깐한 나를 포용했던 옛 깐부가 떠올랐다. 가난으로 배고픔을 참아내야 하는 밑바닥의 삶에서 용케도 잘 참고 살아왔었다. 친구는 슬픔을 콧노래로 녹여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목이 아프도록 노래를 불렀다. 서로 위로해주고 고통을 달래주던 친구에게 나는 양은 도시락에 얹힌 달걀부침을 반으로 잘라 주었던 기억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하늘을 나는 새 ‘비익조’처럼 함께 사는 가장 소중한 깐부가 있다.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어서 항상 짝을 지어야 날아다닐 수 있다는 새처럼 서로 위하여 배려하는 사람 배우자가 있다. 땅에서는 연리지가 내 삶에 동행한다. 비목어는 바다에서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사랑의 힘을 공유한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 부부가 진짜 깐부이다. 고통을 다독여주는 동반자 짝꿍이다. 고통은 사랑의 무늬였다. 사랑을 금 저울에 달아서 수평을 이루지 않아도 서로 배려하며 사는 부부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환멸이 덮치는 위험이 있을 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법정 스님은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터벅터벅 걸어가는 힘든 어깨가 가을이 오는 소리를 먼저 듣곤 한다.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무리를 이루고 생존하는 꽃. 그래서 천박하기까지 보이는 꽃. 이름을 불러보면 더 슬피 보이는 꽃이 날 위로한다.

뚱딴지꽃은 나를 지배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나 향기가 없어서 마음이 끌린다. 과시적 여가와 소비 그리고 헤프게 햇볕을 낭비하지 않는다. 지배계급을 인지하도록 과시하는 인간이 아니어서 뚱딴지꽃이 마냥 좋다. 가을바람에 한들거리지 않는 꼿꼿한 꽃대가 사람의 척추처럼 위태로운 땅을 붙잡고 버티는 생존의 모습에 존경한다. 바람은 머물려고 부는 게 아니라 지나가려고 분다. 외로움도 그렇다.

생명의 끝자리가 신호등처럼 보여서일까? 평평한 땅이 아닌 궁핍한 땅, 비탈진 언저리에 몸을 부리고 있는 꽃, 돼지감자꽃을 나는 뚱딴지꽃이라 부른다. 꽃은 마음대로 흔들며 허공에 그림을 그린다. 그 풍경을 ‘자유’라는 단어로 원고지에 옮기고 싶었다.

뚱딴지꽃은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터득하며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척박한 땅에서 생존하는 법, 햇볕을 고루 나누고 바람으로 어루만져 줄 너그러운 생의 방법을 전수했을 것이다. 공평한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작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 그것이 자유! ” “어제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 않으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라고 매 순간 환희로 사는 조르바처럼 변신하기 위하여 자유를 몸 안으로 스며들도록 노력해 본다. 그 매력을 체험하는 내가 되어본다. 자유가 나의 마음을 끌고 다니도록 순종한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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