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정착은 엄청난 운명의 결정
열매의 정착은 엄청난 운명의 결정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1.10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천 바람이 강물의 발길을 붙잡고 꽁꽁 얼리고 있다. 목적지 없이 둥둥 떠다니던 페트병이 방향을 잃고 흩날리는 눈보라에 시간을 내맡기고 있다. 새들은 아예 바깥출입을 삼가고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린다. 마치 자가격리처럼 꼼짝달싹하지 않는다.

 억새들도 겨울을 나는 요령을 터득한지라 이미 쓰러져 땅에 드러누워 있다. 그 마른 풀숲에 가만히 다가서면 숨어서 속삭이는 새소리가 들린다. 겨울바람은 방랑자처럼 떠돌다가 남쪽과 북쪽의 소식을 전해준다. 잘 듣고 있을 귀가 있어야 세월을 놓치지 않는다.

 눈보라를 견디어야 할 숲속 열매를 생각한다. 열매는 자신의 의지로 해야 할 일을 주지 않는 것처럼 요즈음 코로나19에 시달린 우리도 마찬가지다. 땅으로 곤두박질 친 열매의 비명을 들어본다. 열매는 구르고 굴러 자기의 운명에 따라 생을 내맡긴다.

 실망이 커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보도를 듣다가 애초에 서울 아닌 전주에 터를 잡고 살아온 운명이 차별화된 빈부의 격차를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땅의 경사를 견디어 내지 못하고 낮은 곳으로 계속 미끄러지며 바위 틈새에 자리를 잡은 신갈나무 열매의 운명은 어떠하랴. 이동 불가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 조상 대대로 빛바랜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방문자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여행지에서 볼 때마다 조부모 사진을 걸어 놓은 자녀가 없어서인지 부끄러웠다.

 다행히 다람쥐나 청설모, 멧돼지의 등에 업혀 도시의 숲에서 싹을 틔운다면 어떨까 하는 망상도 해보는 새해가 답답하다.

 덕유산 꼭대기에서 맞는 눈보라에 잔가지들이 몸부림치는 처절한 나무의 등을 본다. 늘 바람을 맞는 곳에 있는 나무들은 몸을 구부려 바람의 저항을 이겨내는 생의 투쟁을 보노라면 코로나19를 견디어 내는 이족보행의 사람은 참 행복하다고 느낀다.

 열매는 보금자리 이동은 생에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처음 발을 내린 곳에서 생을 이어가는 운명의 열매가 차라리 부럽다. 왜냐하면 전주까지 내려와 외지인들이 부동산 투기를 하는 풍경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왜 막지 못하는 걸까. 아니 알고도 그냥 시늉만 하고 무관심한 거가 아니었나 싶다. 전라북도 인구가 감소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젊은 세대들이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고 또 학교나 유명한 병원, 회사들이 수도권에 있어서 취직되어도 거처해야 할 주택 임대료 때문에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한다.

 어미의 곁을 떠난 열매가 혼자서 세상을 견디어 내기란 참 어려운 현실이다. 껍질을 뚫는 일, 뿌리를 내리는 힘, 이파리를 내는 노력이 있어야 나무로 성장한다. 이렇듯 어린나무가 생존을 터득하기까지 사회적 도움이 필요하다.

 가족을 떠나 첫 사회 경험에 희망과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기성세대들이 사회를 정화하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케팅이 비대면 마케팅으로 변화해 가는 조짐이 보인다. 배달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거나 기존 전화 주문이 앱을 이용하여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를 하는 세상이 왔다.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비대면으로 소비가 가능한 세상의 문턱에서 시니어들은 재빨리 적응하도록 배워야 한다.

 샛별배송이란 단어에 접하고 어리둥절했던 일,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 등을 볼 수 있다는 Over The Top 단어와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2021년에는 부지런히 공부해야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해본다.

 이는 코로나19 전 세계적인 유행병에 따른(Pandemic) 비대면 마케팅(Untact Marketing)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의 현실에 눈을 크게 뜨고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에 머물지 마라! 노년의 삶을 불안해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가기 때문이다”라고 고대 로마의 문인이며 철학자, 변론가인 마르쿠스 툴라우스 키케로가 말했다. 그는 “노년은 지성과 영혼이 최절정의 경지에 이르는 황금기”라고도 했다. 노숙함과 노련함으로 무장하여 노익장을 과시하려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신조어도 알아둘 만하다.

 열매가 처음 발을 내린 곳에서 생을 이어가는 운명처럼 현실의 환경을 견디어 낼 면역을 키우며 살 일이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