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37>좋구나, 이런 요물단지
가루지기 <537>좋구나, 이런 요물단지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3.04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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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15>

옹녀 년이 서둘렀다. 일단은 사내의 연장을 한번은 써 먹게 하자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방사까지 허용할 생각은 없었다. 사내의 애간장만 녹이다가 밭갈기를 그만두게 할 요량이었다. 그래야 사내가 환장을 하고 덤빌 판이었다. 꽃값이 열 배 스무배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칫 사내한테 방사까지 시켰다가 고태골로 갈까 그 일도 걱정이었다. 산내골로 들어가 강쇠 서방님을 만난 이후 옹녀

는 사내를 만나 살풀이를 벌이드래도 방사까지는 허용하지 않을 요량을 단단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함양의 이생원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오냐, 오냐. 갈마, 갈아야제. 연장이 튼튼한데 이까짓 밭이야 못 갈겠느냐? 흐참, 흐참. 이런 요물단지가 어딨다가 이제 왔을꼬이.”

이생원이 흐흐흐 웃다가 연장을 밭고랑 속에 푹 디밀었다.

“흐메, 나 죽겄소.”

옹녀 년이 감청으로 화답했다. 그럴 수록 사내는 신명이 나기 마련이었다. 제 놈의 연장에 밭을 내 준 계집이 죽겠다고 아으아으 소리를 내지르면 물건은 더욱 기운을 내게 마련이었고, 힘든 줄도 모르고 밭을 갈게 마련이었다.

제 놈의 말대로 한번 고개를 들고 밭을 갈기 시작한 이생원의 쟁기날은 좀처럼 일을 끝낼 줄을 몰랐 한나절을 간다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좋구나, 이런 요물단지가 없구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기분이 묘허구나.”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몰아 쉰 이생원이 말했다.

“안직 멀었소? 나리. 이년언 펄새 몇 번이나 극락얼 갔다왔구만요.”

옹녀 년의 거짓말에 이생원이 흐흐흐 흐뭇하게 웃었다. 계집이 극락에 다녀왔다는 말을 싫어할 사내는 없었다.

“그랬냐? 나는 아직 멀었는데, 너는 극락을 다녀왔느냐? 허허, 이것 꽃값은 내가 아니라, 네가 나한테 주어야겠구나. 주막 뒷방에서 네가 만난 사내들이라야 뻔할 것이 아니드냐? 오냐, 내가 오늘 너

를 아예 죽여주마.”

이생원의 말에 옹녀 년이 속으로 흐흐 웃었다. 제까짓 놈 쯤이야 한 순간에 골로 보낼 수도 있는 계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입을 놀려대는 사내가 웃기는 것이었다.

“아이고, 나 죽소. 나리, 생원나리, 나 죽소. 날 좀 살려주씨요.”

옹녀 년이 그렁그렁 숨소리에 섞어 비명을 내지르다가 두 다리를 뻣뻣하게 뻗으며 온 몸에서 힘을 쭉 뺐다. 사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자기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라 옹녀 년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밭고랑에 단단히 박힌 쟁기날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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