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63> 꽃도 팔고 웃음도 파는 계집
가루지기 <563> 꽃도 팔고 웃음도 파는 계집
  • <최정주 글>
  • 승인 2003.09.05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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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39>

‘저 잡놈을 서방님의 손을 빌리지 말고 내가 어뜨케 해뿌리까?’

계집의 뇌리로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옹녀 년은 강쇠 서방님을 만나고 나서는 비록 사내와 아랫녁 송사를 벌여도 사내가 고태골로 가는 꼴은 면했지만, 그것은 제 년이 사내의 진기를 다 빨지 않아서 그렇지 제 년이 마음 먹고 사내를 다룬다면 계집에 허천들린 사내 하나 쯤 고태골로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핫고 있었다.

설령 고태골로는 가지 않드래도 다시는 아랫도리를 쓰지 못할 허리병신은 될 것이었다. 정사령놈을 고태골로 보내지 않드래도 허리만 못 쓰게 만들어 놓으면 서방님을 죽이겠다고 찾아다니지는 않을 것이었다. 가다가 성황당이나 상여막같은 곳에서 사내의 아랫도리만 벗기면 일은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계집의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사령 놈은 보일듯 말듯 따라오고 있었다. 옹녀 년이 꽃을 꺾는 체, 다리가 아파 무릎을 두드리는체, 슬쩍슬쩍 돌아다 보면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저 잡놈이 기언시 집꺼정 쫓아올랑갑구만이.’

옹녀 년이 투덜거렸다. 사내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작정한대로 정사령 놈을 제 집에서 작살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인월 주막으로 나갈 때만해도 며칠은 걸리려니, 생각했는데 일이 쉽게 풀린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함양의 조선비가 마천 주막에서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강쇠 서방님은 또 주막의 투전판에라도 기웃거리고 싶어 좀이 쑤셔 안달인데, 정사령이 이삿짐 뒤의 강아지처럼 따라오는 것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옹녀 년이 입에서 쉿소리가 나도록 서둘러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서쪽 산날망으로 해가 꼴깍 넘어가고 난 다음이었다. 산골의 어둠은 골짜기를 뭉텅뭉텅 타고 내려와 이내 마당을 덮기 마련이었다.

옹녀 년이 우선 부억으로 들어 가 물부터 한 바가지 퍼 마시고 나와 마루에 걸터 앉아 회색으로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 쯤 닫은 사립 너머로 검은 벙거지 끝이 기웃이 넘겨다 보았다.

“아니, 저것이 누구래요?”

옹녀 년이 호들갑을 떨며 몸을 일으켰다.

“네 년이 나럴 우롱하였겄다?”

정사령이 성큼 사립을 들어서며 말했다.

“먼 말씸이다요? 이 년이 나리럴 우롱허다니요?”

“멋이 어쩌고 어째? 벙든 서방님얼 뫼시고 산다고? 인월 주모가 그러는디, 주막얼 굴러댕기던 계집이람서? 꽃도 팔고 웃음도 파는 계집이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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