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76> 빌어 묵을 년...
가루지기 <576> 빌어 묵을 년...
  • <최정주 글>
  • 승인 2003.09.24 1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 옹녀의 전성시대 <52>

은대암 스님이 호통부터 치고 나왔다.

“하이고, 오랫만에 만내가꼬 먼 말씸얼 그리 험허게 허신다요?”

옹녀 년이 눈으로는 웃으면서 입으로는 섭섭하다는 투로 항변했다.

“불지옥에 떨어질 년같으니라구. 네 년의 몸둥이는 음기로 똘똘 뭉쳐 있거늘,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나불거리느냐?”

“시님께서 그리 잘 알고 계시면, 그 음기럴 풀어주시면 될 것이 아닙니까요. 대자대비허시고 도력이 높으신 시님이 이 불쌍헌 년의 음기럴 풀어주시면, 이년의 음기땜시 죽어가는 애먼 사내 몇언 살릴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요. 어뜨케 허실라요? 쩌그 풀섶으로 들어가끄라우? 염불이라도 허심서 이년의 음기럴 풀어주실라요?”

“빌어 묵을 년, 지옥의 유황불에 던져질 소리만 하고 있구나.”

은대암 스님이 혀를 끌끌 차다가 한 걸음 떼어 옮겼다.

“시님, 이 불쌍헌 년의 소원얼 못 들은체끼 허실라요? 이년의 그런 소소헌 소원도 못 들어주시는 시님이 어찌 중생얼 구제허시겄소? 그날밤 은대암 폭포가에서 시님의 연장을 잠깐 보고 난 후로 이년언 잠얼 못 잤구만요. 그 튼튼헌 연장으루다 밭 한번만 갈아주씨요. 혹시 아요? 이년의 묵정밭이 새밭이 될란지도요.”

옹녀 년이 입가에 슬며시 웃음까지 띠고 금방 손이라도 잡을 듯이 설치자 은대암 스님이 불쌍한지고, 참으로 불쌍한 지고, 하고 중얼거리며 한 쪽으로 비켜 가던 길을 갔다. 그 등 뒤에 대고 옹녀 년이 한 마디 던졌다.

“시님, 이년이 언제 한번 찾아뵙지요. 그때넌 시님의 연장언 이년 껏이요이.”

그러나 스님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옹녀 년이 깔깔거리다가 마천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나저나 조선비넌 어뜨케 작살얼 내제? 반병신얼 맹글까, 온 병신얼 맹글까, 옹녀 년이 궁리하며 마천 삼거리 주막에 들어섰다.

“왜 이리 늦게 와?”

마루에 앉아 눈을 빼며 기다리고 있던 주모가 지청구 먼저 떨었다.

주모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안방 문이 벌컥 열리고 조선비가 고개를 내밀다가는 몸을 일으켜 마루로 나왔다.

“이년얼 찾으셨다고라?”

옹녀 년이 고개를 살풋 숙이며 물었다.

“찾고 말고. 일각이 여삼추로 너를 기다렸니라.”

“씨잘데기도 없는 이년얼 멋허실라고 기다렸다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