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말 없는 말’
[2023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말 없는 말’
  • 조제인 씨
  • 승인 2023.01.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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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19분, 한종주 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의사가 사망 시간을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뇌사로 판정된 남편의 배를 갈라 콩팥, 간장, 각막을 적출하고 호흡기를 뗀 시각을 말해주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의사가 굳은 입술과 무거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초로의 잔주름에 검버섯 핀 눈가, 은테 안경알이 내 얼굴을 비추듯 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의사와 내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나는 입원실에 짐을 챙기러 갔다. 병실의 링거와 생명 보조장치가 치워졌고 침대 시트가 갈아졌다. 남편이 열흘간 머문 병실이 낯설었다. 창가에 하얀 민들레가 말라 있었다.

사물함을 열어 물건을 챙겼다. 남편이 입었던 옷을 개어 가방에 담았다. 코트와 와이셔츠 목덜미에 피 얼룩이 꾸덕했다. 바지에서 벨트가 툭 떨어졌다. 반질한 버클과 가죽이 바닥에 허물처럼 늘어졌다. 7년 전 남편에게 선물한 지갑과 세트인 벨트였다. 지갑은 바꿨지만 벨트는 이것만 고집한 남편이었다. 버클을 조일 때 당신이 백허그로 안아주는 느낌이 들거든. 새 벨트로 바꾸지 않는 이유가 스스로도 멋쩍었는지 남편이 쑥스럽게 웃었다. 어라, 립서비스도 할 줄 알고. 당신 정말 갱년기구나. 남편의 엉덩이를 토독토독 두드렸다. 보지 않고도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이 보였다.

벨트를 주워 먼지를 털었다. 남편 바지에 끼우려다 마음이 바뀌어 내 허리에 둘렀다. 실금이 생긴 부위에 버클을 채웠다. 주먹 두 개가 들어갈 만큼 헐렁했다. 버클을 풀고 허리가 조일만큼 가죽을 당겼다. 헐겁지 않게 단단히 조았다. 당신이 말한 백허그 느낌이 이런 거였어.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숨을 삼켰다. 벨트를 더 강하게 당겼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빈 침상을 향해 눈물을 흘리는 그로테스크한 내가 보였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되뇌면서도 벨트를 당기고 또 당겼다.

 

*

 

열흘 전,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응급수술 중이었다. 오전 9시 25분경 청주도서관 부근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내리막길에서 트럭이 바뀌는 신호를 못 보고 길을 건너던 남편을 친 것 같습니다. 응급처치는 했으나 의식이 없고 상황이 심각해 서울로 이송했다고 경찰이 말했다.

경찰이 건네준 남편 핸드폰은 액정이 깨지고 전원이 꺼져 있었다. 가방 어깨 부분과 등판에 선혈이 어지럽게 배여 있었다. 지난해 수강생들이 스승의 날 기념으로 사줬다는 가방이었다. 선생님, 손가방보다 메는 가방이 편하고 젊어 보여요. 수강생들이 했다는 말을 전하며 어때 괜찮아? 내 앞에서 가방을 메고 상기된 표정을 짓던 남편이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남편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사는 뇌출혈과 심정지 상태라며 뇌사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한종주 선생님, 어떡해요…….

앳된 목소리의 사서가 울먹였다.

남편은 수도권과 지방 도서관에서 교양강좌를 해왔다. 나를 만나던 해부터 강좌를 시작했다 하니 7년쯤 강사 경력을 쌓은 셈이다. 강의 전에는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며 책을 읽고 쓰는 일을 했지. 밥벌이가 될까 걱정도 했지만 가볍게 풀어쓴 교양서가 3쇄를 찍고 나서 몇 권 더 출간하게 되었고……. 그럴 즈음 도서관에서 강의 제의가 왔지. 불행이 겹쳐서 오더니 행운도 연달아 온다는 걸 알았어. 그때 당신도 만났으니까.

남편의 강의는 인기가 있었다. 몇 군데 도서관에서 비슷한 강의가 이어졌다. 사고가 난 날은 12주 과정의 ‘동화책으로 배우는 인문학’ 종강 날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던 남편이 뒤풀이가 있으면 좀 늦을 수 있어, 라고 했다.

저희 도서관에 오다 당한 사고라 더 충격적이고…….

올해가 첫 근무라는 사서가, 병원 호실을 물어보라는 관장의 말을 전했다.

의식이 없어 오셔도 못 알아보실 겁니다. 전화만도 감사합니다.

병문안 가겠다는 수강생도 있어서요. 서울 거주잔데 선생님 강좌 찾아다니며 듣는 분이래요. 종강 선물로 준비한 것도 전해드리고 싶다고…….

울먹여도 조근조근 할 말은 다 하는 사서였다. 목소리만큼 야무진 얼굴일 듯했다.

호흡기를 달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이틀째 의식이 없었다. 깊은 혼수상태다. 확대된 동공에 빛을 비추어도 반응이 없었다. 의사는 뇌사 상태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남편 손에는 온기가 있었고 얼굴을 만져도 예전 감촉이 느껴졌다. 기계지만 호흡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온 사례도 있었고. 수강생 목소리를 알아들을지도. 어지러운 생각들 사이로 목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아직 안 깨어났지만,…… 903호입니다.

 

사흘……. 나흘……. 닷새가 지났다. 남편은 미동도 없었다.

 

아침에 회진을 온 의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께서 장기기증 서약을 한 적이 있나요?

의사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검사 결과가 나왔나요?

네. 최종 뇌사 판정이 나왔습니다. 남편의 콩팥, 간장, 각막은 이식이 가능합니다.

남편은 마흔에 장기기증 서약을 해 두었다고 말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 나도 서약을 했었기에 우린 이런 면에서도 잘 맞는구나, 한 적이 있었다. 사전서약이라면 직계존비속 동의를 꼭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가족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어머니를 보러 치매 요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여든이라는 나이에 비해 눈빛이 맑은 노인이었다. 남편을 보고 오빠라고 불렀다. 나를 보더니 순자 왔네, 하며 좋아했다. 어릴 때 동네 친구가 순자였대. 돌아오던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서른 번도 넘게 만났지만 그녀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빈소는 장례식장 안쪽 가장 작은 호실이었다. 올 손님이 없었지만 중섭 씨는 부고를 알리고 장례 절차를 챙기는 일은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내가 남편을 안 것은 7년이지만 중섭 씨와 남편은 37년 지기였다. 다시 말해, 내가 모르는 남편의 30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짐작만 했지, 나는 남편이 풀지 않은 봉인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알든 모르든 내가 달라질 건 없었다. 남편이 겹겹 접어둔 상처와 고름을 지켜본 이가 중섭 씨다. 노란 띠 두른 상복을 입고 국화꽃 사이에 영정사진을 놓는 그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지유 씨, 핸드폰이 꺼져 있었나 보네요.

짐가방을 옮기던 나를 보고 중섭 씨가 말했다.

나는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내 것, 남편 것, 둘 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아…….

수의와 관을 선택해야 하는데 상주님 연락이 안 된다고……. 오셨으니 저랑 같이 사무실로 가시죠. 그리고 입원 병동에서도 전화 왔어요. 사물함에 두고 간 액자가 있다고.

나는 흠칫했으나 무표정을 가장했다. 사물함에 있는 액자는 내가 일부러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 이유를 그에게 설명하는 게 불편했다.

액자는 남편 수강생이라는 여인이 가져온 것이었다. 그녀가 간 뒤 액자를 풀어봤다. 20*20 크기의 투명 아크릴 안에 남편 책에 나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꽃은 져도 다시 핀다.’ 연한 베이지색 이합지에 먹으로 글씨를 쓴 캘리그라피 작품이었다. 글씨 옆에 말린 하얀 민들레꽃 장식이 있었다. 낙관 주변으로 수강생들 사인이 촘촘했다.

별다른 건 없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액자를 다시 포장해 사물함 아래 칸에 넣었다. 저녁에 중섭 씨가 왔을 때 낮에 수강생이라는 여인이 병문안 왔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고도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그랬는데 지금 와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장례사무실에서 수의와 관을 정했다. 중섭 씨는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자신이 액자를 갖고 오겠다고 했다.

 

*

 

그녀가 온 날은 남편에게 뇌사 최종 판정이 나온 날이었다. 나는 창밖을 보고 있었고 노크 소리와 함께 그녀가 들어왔다. 미색 코트를 입은 아담한 중년 여인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다소곳했다. 단발머리를 짧게 묶었는데 희끗한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한 선생님께 배우고 있는 수강생입니다.

그녀가 인사를 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수강생들이 함께 준비했어요. 그녀가 쇼핑백을 내밀었다. 포장된 액자와 화분이 있었다. 작은 망울이 맺힌 하얀 민들레 화분이었다. 선생님께서 이 꽃을 좋아한다고 하셨거든요. 토종 흰 민들레는 서양민들레 홀씨가 날아와도 화접을 거부하는 일편단심이 좋아. 남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민들레 꽃말은 행복한 마음, 감사한 마음이래요. 꽃이 필 즈음 선생님께서도 꼭 깨어나시길…….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젖어 있었다.

그녀가 호흡기 꽂힌 남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말없이 오래 바라보았다. 좀 앉으시죠. 내가 의자를 권했다. 아, 네. 그녀가 답했다. 그때 앗,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아요.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링겔 꽂힌 남편 팔을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아주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한 동작이었다. 등줄기에 빗금이 지나갔다.

간호사 불러 올게요.

나는 급하게 병실을 나왔다.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간호사 자리가 비어 있었다. 복도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낯선 곳에 온 사람마냥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만 두고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한기가 스몄다. 양팔을 감싸 안으며 눈을 감았다. 복도에 홀로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빈 복도가 하얗게 점점 커지고 커졌다. 나는 점점 작게 줄어들고 축소되며 쪼그라들었다. 아주 작은 점으로 소실되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사라져버리는 내가 보였다. 무슨 일이세요, 보호자님. 간호사의 목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나는 눈을 떴다.

간호사와 함께 병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나올 때 자세 그대로 남편 손을 받치고 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그녀가 수그렸던 얼굴을 들고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번진 얼굴과 충혈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말을 잃었다.

손을 주사 바늘보다 높이 들고 있었네요. 보호자님, 잘 하셨어요.

간호사가 주사 바늘을 정리해주고 나갔다. 저도 이만, 이라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앞에서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인사했다.

그녀가 나간 뒤 누워있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여보, 누구예요? 묵묵부답. 남편은 말이 없다. 지금이라도 뛰어가면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코너를 돌고 있겠지. 그녀를 불러 세워 묻고 싶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남편과 잘 아는 사이였나요? 왜 그렇게 우셨어요? 남편 손을 그렇게 다정하게 잡는 데 무척 놀랐어요. 당신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당신도 나를 남다르게 느끼나요? 그녀는 무어라 대답할까. 당신처럼 말이 없을까. 아니면, 아무 사이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지유 씨. 그냥 존경하는 스승과 제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랍니다. 이렇게 답하며 미소 지을까. 아니면, 채지유 씨,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에요. 아니, 묻지 않는 게 더 좋아요. 물어보지 마세요.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정색하며 돌아설까?

 

*

 

죽음의 잔치에 사람보다 먼저 온 손님은 꽃이었다.

내 키보다 더 큰 화환 다섯 개가 빈소 옆에 나란히 세워졌다. 국회의원 000, 000당 사무총장, 동창회장 000, 00 출판사, 00 도서관장. 앞의 두 개 화환을 보낸 이들에게 중섭 씨는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동창을 통해 듣고 보낸 것 같다고. 한 때 남편과 동지였다는 이름을 화환으로 처음 보게 되었다.

남편은 이른바 586세대로 격렬한 20대를 보냈다. 4학년 졸업반 때 시위 주동 세력으로 체포되어 1년 6개월 복역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명문대 갔다고 좋아했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6·25 때 이북에서 피란 와서 시장에서 장사하며 아들 하나만 보고 산 아버지였다. 아들이 판사가 될 줄 알았던 어머니는 졸업도, 취업도 못한 아들을 가슴 아파하다 조기 치매가 왔다.

화환을 보내온 두 정치인은 남편과 같이 주동 세력으로 복역한 사람이었다고 중섭 씨가 말했다. 국회의원은 야당 3선 의원이었고, 사무총장은 여당 고위직이었다. 같은 길을 걷던 세 청년이 삼거리에서 갈라진 거죠. 국회의원은 보수로 돌아섰고, 사무총장은 왜곡된 진보로 위장했죠. 둘은 어쨌든 현실에 적응했어요. 하지만 종주는 적응하지 못했죠. 적자생존에서 도태되는 유형은 자연이나 사람이나 비슷해요. 변하지 않거나 변하지 못하거나. 종주가 그러했죠.

보내온 화환이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굳이 돌려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마 종주도 그럴 거예요. 어떤 형식으로든 한 번은 만나야 할 이들이었으니까요. 막다른 벽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화환들을 바라보며 중섭 씨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종주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어요. 그들 중에 어떤 이는 암으로 사망했고 자살한 선배도 있었지요. 종주가 부친의 죽음과 모친의 조기 치매로 자책감과 자포자기에 빠진 것은 맞습니다만, 그보다 더 문제가 된 건 공모자들의 침묵 속에 묻혀버린 진실이, 종주 스스로를 파괴하는 내면의 폭력이 되었던 거죠. 종주는 그들의 변화를 인정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알콜 중독과 공황장애로 장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었죠.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종주가 침묵 속에서 책만 읽어 나갔어요. 꼬깃꼬깃 접어 삭히며 견뎌낸 시절이었죠. 중섭 씨 눈가가 촉촉해졌다.

남편이 입원해 있는 동안 중섭 씨는 매일 찾아와 늦은 시각까지 병실에 머물렀다. 뇌사 상태에 빠진 남편을 바라보는 침묵이 힘들 때면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남편과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어느 날, 종주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 다섯 살 난 딸 아이가 종주한테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가져갔죠. 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던 종주가 ‘그래서 강아지똥은 민들레 거름이 되어 꽃을 피웠습니다.’를 읽다가, 책장을 못 넘기고 한참 그대로 있는 거예요. 내가 얌마, 왜 그리 멍한 표정이냐? 했더니 종주가 말하더라구요. 중섭아, 민들레 홀씨는 이토록 가벼운데 나는 왜 그토록 무겁게 살았을까…… 혼수상태인 남편을 응시하며 중섭 씨는, 종주 니 그 말 했던 거 기억나나? 하며 눈물을 훔쳤다.

힘들 때마다 옆에 있어 준 사람이 중섭이었다고 남편은 말해왔다. 중섭 씨는 6개월 단기 복역을 했고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지금은 영업 상무로, 연금공단에 다니는 아내와 아들, 딸 하나씩 둔 가장이 되었다. 녀석은 맷돌 같아. 반질반질 닳은 듯하면서도 차돌처럼 단단할 때가 있거든. 내가 갖지 못한 걸 갖고 있지. 사실 녀석도 원래 변하지 못하는 유형이야. 변한 듯 보여도 본질은 나와 같아. 나는 통 맹꽁이지만 그는 연기를 잘해. 말 안 해도 그걸 알아. 녀석도 알고 나도 알지.

남편이 스치듯 해준 말들을 엮으면 중섭 씨가 보였다. 중섭 씨가 남편을 끌어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임마, 울지 마라. 남편이 중섭 씨의 어깨를 다독이는 것이 보였다.

저녁 때 중섭 씨의 아내가 아들, 딸을 데리고 왔다. 내 옆에서 팔에 노란 띠를 두른 중섭 씨를 보더니 동그란 눈으로 당신이 진짜 상주 같네, 라고 말했다. 중섭 씨 아내보다 딸이 더 많이 울었다.

음식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던 중섭 씨 아내가 지유 씨는 대부분 모르는 손님들이죠, 했다. 그랬다. 내게 온 손님은 가까운 친인척과 직장 동료 10여 명뿐이었다. 남편의 먼 친척인 거제도 아저씨는 원양어선을 타고 있는 중이었다. 치매 요양원에 있는 시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식을 모르고 있었다.

문상객 대다수가 남편 대학 때 동기거나 동지들이었다. 그들은 20년 동안 남편과 교분이 없었고 나와는 일면식이 없었다. 중섭 씨가 나를 종주 아내라고 소개하자, 너무 소식을 단절한 것이 안타깝네요. 결혼식 때라도 좀 부르지. 너무 올곧아도…… 라고 말끝을 흐렸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인데 중섭 씨 아내는 그들을 아는 듯 상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중섭 씨 아내가 상주 같았다.

중섭 씨 아내를 처음 본 것은 결혼 기념 만찬 자리였다. 우리는 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를 했다. 쉰까지 독신으로 살던 종주 씨 마음을 훔친 이가 누군지 진짜 궁금했거든요. 중섭 씨 아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둘이 어떻게 만났어요? 누가 먼저 프로포즈 했어요? 마흔다섯에 초혼이 흔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웨딩 촬영은 일생에 단 한 번인데, 해 보시지 그랬어요? 음식을 먹는 내내 남편과 나를 번갈아 보며 화제를 주도했다. 3시간에 걸친 식사와 담소를 끝낼 즈음, 종주 씨가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감이 왔다고 그녀가 내 귀에 말했다.

공원 귀퉁이 작은 도서관 비정규직 사서로, 6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며 도서 대출 업무를 하고 있던 나로서는 그녀의 ‘감’이 어떤 건지 몰랐다. 그녀는 이 나이에, 그렇게 작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게다가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이라니……. 그것도 참 인연이면 인연이다, 고 말했다.

맞아. 인연이었어. 그날 퇴근 무렵 도서관 문을 잠그는데 아, 끝났나 보죠? 라며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것부터가. 책 빌리러 오셨나요? 모르는 척 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 필요한 책인데 큰 도서관에는 모두 대출돼 없고 이곳 작은 도서관에만 있는 걸로 검색되어서……. 목소리가 부드러웠어. 담부턴 6시 전에 오셔야 해요.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건 또 뭐지? 아, 네. 그 눈빛에 감사가 담겼더라. ‘강아지똥’ 그림책을 대출해주며 머리도 희끗한데 늦둥이가 있나……. 생각도 했었어. 도서관 문을 잠그고 나란히 걷게 된 것도, 공원 밖으로 나가는 길이 그렇게 길었던 것도, 그것 때문에 그가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혹시 ‘강아지똥’ 읽어보셨나요?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남편의 프로포즈가 뭐였는 줄 알아? 빌려 간 책을 반납하면서 새로 산 ‘강아지똥’을 함께 내밀었어. 이 책 같이 읽을까요? 하면서. 공원을 오다 보니 발밑에 보이는 꽃이 있더라구요. 자, 이거요. 순박해서 더 예쁘죠, 라며 하얀 민들레꽃 하나를 내 손에 올려주더라. 이런 프로포즈 받아본 적 있니?

 

신혼의 어느 밤, 남편이 팔베개를 한 채 이데아 게임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이데아 게임? 그게 뭔데?

보지 않아도 보이고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일종의 마음 놀이.

응?

직접 해 보면 알아. 자, 눈을 감아봐.

남편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뭐 그 정도쯤이야, 하는 눈빛을 보낸 후 눈을 감았다.

느낌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거야. 눈을 감고 있는 네 모습과 내 모습을 떠올려봐. 어때 보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나도 눈을 감을게. 내 말이 들리면 손가락 신호를 보내 줘. 자, 지유야, 시작해. 말없이 나를 불러봐.

 

(종주 씨.)

 

<그래. 내 대답 들렸어?>

(응.)

 

<하고 싶은 말 해봐.>

(정말……. 흐음……. 그래.…….)

 

남편 손을 잡은 채 소리 없는 말을 했다. 당신을 처음 본 날……, 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남편의 숨소리가 들렸다. 희미한 어둠 속에 누워있는 그와 내가 보였다. 방 안 공기가 이리저리 부유하는 게 보였다. 깍지 낀 손 사이로 온기가 전해왔다. 내 이야기에 따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온몸으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이번에는 남편이 소리 없는 말을 했다. 그래, 나도 그랬어. 담부턴 6시 전에 오세요, 라는 당신의 말에 가슴이 설렜거든……. 남편이 내 손가락을 어루만졌다.

남편은 말하곤 했다. 사물에 이데아가 있듯이 사람들도 자기만의 이데아가 있어. 겉모습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감각이 아닌 직관으로 느끼는 것. 보이지 않아도 변함없는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되고, 연인이 되는 거야. 부부가 된다는 것은 가장 특별한 이데아 게임을 경험하는 거지…….

우리는 때때로 이데아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자 해서 한 것이 아니라 공원을 산책하거나 경치 좋은 곳에 시선을 나란히 둘 때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늦은 밤 서재를 열면 고개 숙인 남편이 미소 짓는 게 보인다. 보지 않고도 내 얼굴 표정을 읽는 그를 본다. 서로에게 깊숙이 들어가면 거기에 또 다른 내가 있다. 나와 다르지만 나와 같다. 이심전심, 염화미소라는 말이 생긴 이유다. 섹스 후 주고받는 이데아 게임은 깊고도 아득했다.

 

*

 

늦은 밤. 문상객이 거의 돌아갔다. 중섭 씨는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족을 데리고 갔다. 나는 벽에 기대어 영정사진을 보았다. 남편이 웃고 있었다. 다섯 번째 책을 낼 때 내가 찍어 준 프로필 사진이었다.

여보, 당신 봤어요?

예전에 당신 동지였다는 사람들. 꽤 많이 왔다 간 거. 차마 연락은 못 했지만 잊은 건 아니었다고 하던 말도 들었어? 언젠가 당신을 만날 날이 있을 거라 여겼대.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될 줄 몰랐다며 울던 사람은 당신과 꽤 친했었나봐? 잊은 줄 알았는데 기억으로 늘 가슴에 품은 채 살았다고 했어. 당신도 그랬겠지? 그렇지, 여보……. 당신이 쓴 책을 다 읽었다는 독자도 왔었어. 참 고맙더라. 초등생 손녀가 있다는 할머니가 한 선생님을 존경해 왔습니다. 덕분에 동화책에서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라고 인사할 땐 정말 당신이 자랑스러웠어.

그런데 여보……. 그녀가 오지 않았어. 내가 그녀를 기다렸다는 것 당신은 알지? 꼭 올 사람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도. 혹시라도 싶어 내가 빈소를 거의 비우지 않았다는 것도. 내가 그녀를 기다린 것처럼 당신도 그녀를 기다렸지? 내일은 그녀가 올까?

 

다음날, 사고를 낸 트럭 운전자가 형과 함께 찾아와 분향을 했다. 30대 초반인 젊은이는 정육점에 고기를 배달해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만삭의 아내가 있다는 그가 취업한 지 보름도 안 돼 길이 익숙지 않았다며 엎드려 울었다. 과실치사로 형사처벌은 불가피하지만 합의를 해주고 선처를 당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남편에게 장기를 이식받은 5명 환자의 가족들도 몇 사람 왔다. 아들이 남편의 신장을 이식받았다는 중년 신사는 남편과 같은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 당시 무임 승차한 부끄러움이 아직도……. 말 줄임표 안에 그가 하지 못한 말들이 읽혔다. 아들에게 남편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주었다고 했다. 아들이 감사함과 함께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 했다고 말했다.

첫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몇 팀 더 왔다. 나는 부족한 수면과 피로에 지쳤으나 은연중에 그녀를 기다렸다. 여성 문상객이 오면 긴장이 되었다. 책 모임을 함께 했다는 여성도 있었고, 출판사 편집장, 도서관 사서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니었다. 내가 왜 그녀를 기다리는지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기다렸다가 막상 그녀가 온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그녀는 꼭 올 사람이었고, 와야 하는 사람이었으며, 남편과 마지막 작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밤이 깊었다. 문상객이 거의 돌아갔다.

남편 지인 중 올 만한 사람인데 안 온 사람이 혹시 있나요?

벽에 등을 기댄 채 내가 중섭 씨에게 물었다.

글쎄요. 올 사람은 거의 온 것 같은데요.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중섭 씨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 아니에요. 나보다 중섭 씨가 더 잘 아시니까요.

나는 표정을 감추며 이제 그만 가 보세요, 라고 했다. 그래야겠네요. 내일 발인을 준비하려면. 중섭 씨가 대답했다. 그때 아, 저기 누가 들어오네요, 중섭 씨가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출입구에는 한눈에도 고급스러운 검정 양복을 입은 덩치 큰 중년 남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왼쪽 깃 상의에 무궁화 모형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반짝이는 구두를 벗고 들어선 남자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을 했다. 중섭 씨가 첫 번째 화환을 보내온 이라며, 그 이름을 내게 말해주었다.

배지가 분향을 한 뒤 우리와 마주하고 절을 했다.

얼마나 황망하셨습니까.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무릎을 꿇은 채 배지가 내게 말했다. 중섭 씨를 보며 니는 잘 지냈나? 라고 물었다. 중섭 씨는 고만고만하지. 바쁠 텐데 우째 왔네, 라고 했다. 바빠도 와야제. 배지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종주 모친은 잘 지내시고? 치매 요양원에 계신다. 종주 장례식 모른다. 허허참. 모친께서 동지들 찾아갈 때마다 라면을 끓여주며 반겼는데……. 모친이 보고 싶네……. 배지가 입술을 일자로 문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섭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을 마주한 두 사람 사이로 30년 강이 흘러갔다.

두 사람이 말이 없다. 할 말이 많을 텐데 가슴에 묻은 말이 화석이 된 걸까.

침묵 사이로 말이 오간다. 침묵이 대화다.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할 수 없는 말이 오간다.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했던 말이, 묻고 싶지만 묻지 못했던 말이, 물을 수 없는 말이 오간다.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고도 같다. 나는 배지와 중섭 씨 사이에 오가는 침묵을 지켜본다. 남편도 이들을 보고 있음을 나는 안다.

마침내 배지가 일어나 중섭 씨와 악수하며 수고하게, 라고 말했다. 남편의 영정을 일별한 뒤 구두를 신고 투벅투벅 걸어갔다. 뒷모습이 납처럼 굳고 무거워 보였다. 나는 남편의 영정을 돌아보았다. 그가 웃고 있다.

 

*

 

그녀는 오지 않았다.

 

*

 

발인식을 마치고 영구차에 올랐다. 버스 앞자리에 앉아 남편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았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할 때 중섭 씨가 아, 잠깐만요, 이라며 휴게방에 깜박 놓고 온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차에서 내려 장례식장 쪽으로 뛰어갔다. 바람에 옷자락이 날렸다.

중섭 씨가 액자와 화분을 들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화분에는 하얀 민들레꽃이 홀씨로 변해 있었다. 가녀린 줄기를 곧추세운 하얀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어졌다. 중섭 씨가 액자로 화분을 가렸다. 홀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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