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2) 박지영 시인의  ‘세상’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2) 박지영 시인의  ‘세상’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5.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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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 박지영 시인
 

 

 고추대처럼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릎을 세우고 목을 가누고 말을 하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한 바퀴 뱅그르르 돌아가는

 인생이라고 그러지 맙시다

 

 내 딸이 장애인이라서 가족까지 장애인 취급은 어렵지요

 식당 손님으로도 불편했던 적도 많았지요 죄송했었습니다

 

 이제는 소천한 딸을 더듬고 세상의 장애인들을 벗 삼아 조금은 그러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가리지 않고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꽃처럼 살아보려 합니다

 

 <해설>  

 이 시에서 시적자아가 보편적인 엄마가 아이라 시인 자신입니다. 시인은 딸아이가 무릎을 세우고 목을 가누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리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한 바퀴 뱅그르르 돌 수 있는 열일곱 소녀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장면이 꿈이었다고 하니 괜히 성한 몸을 가지고 살면서도 불평불만이 많은 제 자신이 문득 죄스러워집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중증 장애인을 몇 번 접한 적이 있습니다. 물을 컵에 따라 빨대를 꽂아 입에 대주어야 하고, 화장실을 갈 때는 들어서 앉혀야 하고, 또 옷을 입혀서 특수한 휠체어에 앉히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는 베란다에 심은 고추나무에 고춧대를 고정시키며 쓴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몸을 곧추세워서 햇살 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정상적으로 서지 못하는 아이나 엄마의 안타까운 심정이 시의 행간에서 읽혀집니다. 

 시인은 아이 때문에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슬픔보다 더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기도 하지만 엄마는 자식 앞에서만은 언제나 용감합니다. 아침 햇살에 고춧대처럼 반듯하게 척추를 세우고 아이를 식당에 데려가 보지만 그저 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왠지 고개가 숙여진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세상이 많이 바뀌어 중증장애인을 위해 정부나 사회단체에서도 배려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점차 나아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이가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삶까지 살기 위해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사회단체에서 곧은 목소리를 내면서, “세상의 장애인들을 벗 삼아”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젠 있는 그대로 꽃처럼 살아가는 시인에게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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