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폐지 참사
드라마 폐지 참사
  • 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 승인 2021.04.14 14: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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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16부작중 고작 2회 방송을 마친 드라마가 폐지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펜트하우스’ 후속으로 두 달 남짓 공백기 끝에 지난 3월 22일 방송을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가 그 주인공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제작진은 문제가 된 장면을 삭제하고, 다음 주 결방을 통해 재정비에 나서겠다”(동아일보, 2021.3.25.)고 밝혔지만, 다음날 전격 폐지를 발표했다.

SBS는 “드라마 방영권료 대부분을 선지급한 상황이고, 제작사는 80% 촬영을 마친 상황이지만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방송 취소를 결정했다”(동아일보, 2021.3.27.)고 밝혔다. 박계옥 작가를 비롯한 감우성(태종 역)ㆍ장동윤(충녕대군 역) 등 배우들의 사과도 이어졌다. 신경수 PD 역시 “드라마의 내용과 관련한 모든 결정과 선택의 책임은 연출인 제게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16부작 드라마가 방송 2회 만에 전격 폐지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은 상상력으로 가장한 역사왜곡 때문이다. 가령 악령으로 인해 환각에 빠진 태종이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는가 하면 후일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이 구마사제 일행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라든가 소품ㆍ배경음악ㆍ의상 등이 중국풍인 게 역사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중국 자본 침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따른 ‘국민적 저항’의 일환이란 시각도 있다. SBS는 “100%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고 선을 그었지만, 최근 중국이 김치ㆍ한복 등을 자국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높아진 반중 정서에 역사왜곡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 할까. 논란이 일자 ‘조선구마사’ 2회는 1회보다 시청률이 떨어졌다. 1회 최고 시청률은 8.9%를 기록했으나 하루 만에 6.9%로 하락했다.

전주이씨 종친회의 강력 반발을 비롯 시청자 게시판에는 항의가 줄을 이었다. 3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역사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즉각 방영중지를 요청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3월 26일 기준 20만 명 넘게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3월 23일 1700여 건 등 민원 폭주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이 아니다. 삼성전자ㆍKTㆍLG생활건강 등 광고주들도 제작 지원을 줄줄이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나주시도 영상테마파크 장소 지원 계약을 철회했다. 이를테면 전방위적 압박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폐지된 ‘조선구마사’인 셈이다. 역사의식에 대한 무개념을 그대로 드러낸 320억짜리 대작의 퇴출이다.

그것은 재미만 있으면 퓨전이든 판타지든 못할 게 없는 사극 제작관행에 대한 철퇴이기도 하다. SBS를 비롯 제작사 등이 금전적 손해를 안으며 일단락됐지만, 자꾸만 새롭고 뭔가 자극적인 걸 원하는 대중일반의 욕구도 드라마 폐지 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퓨전사극 따위는 보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역사 비틀기가 봐주기 힘들 정도로 거역스러워서다. 무릇 창작물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은 물론 위축되어선 안될 일이지만, ‘조선구마사’ 참사는 지금은 없어진 KBS 정통사극 ‘정도전’ㆍ‘징비록’ 같은 대하드라마의 필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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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시 2021-04-16 08:26:09
정도전과 같은 사극도 좋지만 역사적인물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있는 그대로만 표현해야한다는 한계를 들때 문학과 예술에 한계를 스스로 가둬놓는 시작이 되지않을까 걱정됩니다. 해외에는 김정은이나 미국 대통령을 대놓고 희화화하는 영화들부터 파리에서 생긴일처럼 역사적인물들이나오지만 아름답게 꾸며가는 영화들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