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팡집, 기록으로 맛보기
옴팡집, 기록으로 맛보기
  • 송영애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21.04.1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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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에는 1940년대부터 이십 년 동안 ‘전주 음식의 명예를 걸고 음식을 내놓는다.’는 당찬 식당이 있었다. 처마가 낮아서 높고 낮은 사람 할것 없이 기어들어가 기어 나오는 초라한 집이다. 식당을 처음 안내받아 온 서울의 높은 양반들은 나를 어찌 이런 집으로 안내하냐고 아랫사람에게 성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맛을 본 후에는 솜씨를 아껴주며 그 맛을 잊지 못한다는 ‘명물 집’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주인은 심부름꾼을 시키지 않고, 직접 간을 맞추고 일일이 주물러서 음식을 만들고 정성을 들여 상을 차렸다. 이렇게 직접 만든 음식만 ‘진짜’ 취급을 받았으며, 그 외엔 모두 ‘가짜’라고 했다. 만든 지 오래된 음식은 맛이 간다고 하여 반드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백반을 먹으려면 적어도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수고로움도 따랐다.

 판매하는 음식은 백반과 전주 콩나물 비빔밥이다. 비빔밥의 특색은 버섯과 쇠고기를 장조림 한 간장과 고깃국물로 밥을 비비며, 고장의 별미인 나물을 얹었다.

 백반의 대표적인 반찬으로는 특별 양념을 한 조기 찌개와 전어구이, 젓갈로는 성게젓, 고록젓, 전어밤젓, 김치는 고들빼기다. 반찬 하나하나마다 특미가 돌며, 성의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타지까지 입소문이 났다. 맛본 사람마다 전주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은 먹어보라고 자신 있게 권했다.

 이 식당은 바로, 이숙자 여사가 운영한 ‘옴팡집’이다.

 주위의 근대건축물 속에 혼자 옴팍 짜부라진 초가집이라서 손님들이 이름을 붙였다. 도로보다 30~40cm 정도 푹 꺼져 있어 첫발을 디딜 때부터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음식은 한 상으로 차려서 들고 오며, 특히 음식의 양이 많았다.

 1959년 여름, 전주에서는 <단기 4292년도 제1회 전북 영화상> 시상식이 개최되었다. 영화인들은 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하였다. 관공서와 기관 등을 찾아 인사를 하고 옴팡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들이 점심을 먹고 기념으로 찍은 희미한 사진 한 장이 옴팡집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남아 있다. 사진 속 인물은 누구나 알고 있는 신상옥, 최은희, 김진규, 엄앵란이다. 전북 영화상 관계자의 기록에 의하면 “시상식을 마치고 시내 구경을 다니던 중 유명한 전주의 진짜 비빔밥 대접도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당시 전주에서 맛있는 음식은 비빔밥이었고, 진짜 비빔밥은 옴팡집에서 먹을 수 있었으므로 서울 손님은 모두 옴팡집으로 모셨다.

 전주시에서도 명물 옴팡집에 대해 보호 특혜조치를 취하며 영업세 등을 거의 면제로 해줬다. 옴팡집에서 음식을 특별히 싸게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도 ‘진짜 맛’을 파는 옴팡집은 경영난이 닥쳤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보수적인 전주에도 서서히 양식이 도입되고, 대중식사 영업방식으로 손님을 끌고 있는 다른 식당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빔밥 한 그릇에 70~80원은 받아야 했지만, 이렇게 비싼 비빔밥을 먹어줄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값싸고 날림으로 만든 비빔밥은 차마 만들 수 없다는 이유로 주인은 20년 넘게 운영하다가 1961년에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게 되었다.

 사라진 옴팡집은 이후에 어떠한 음식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대중식사를 파는 ‘만나관’으로 바뀌었다. 1966년에는 고사동 선일주장 창고 옆에 새로운 주인이 옴팡집을 개업하였다. ‘傳統과 好評을 받고 있는 純 全州式(전통과 호평을 받고 있는 순 전주식)’으로 판매한다고 광고하였으나, 맛에 대한 기록은 없다. ‘옴팡집’ 맛이 아니라, 이름만 이어온 것이다.

 이후에도 이숙자 여사가 운영한 옴팡집은 하나의 향수처럼 간간이 이야기되어 ‘전주비빔밥의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심지어 옴팡집이 사라진 지 무려 6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찬찬히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송영애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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