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따라 만나는 봄날의 마이산
꽃길 따라 만나는 봄날의 마이산
  •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 회장
  • 승인 2021.04.1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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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전북소설가협회장
정영신 전북소설가협회장

4월이다. 벌써 중순이다. 삼천천, 추천, 송천천변에 줄이어 늘어서 있던 연분홍 탐스런 벚꽃잎들이 후르르 봄비에 날려가고 어느덧 연둣빛 새 잎이 맺혀 있다. 비가 내릴듯하여 비가 쏟아지고 나면 소복소복 한 무더기씩 피어 있던 큰 황홀한 벚꽃잎들이 다 사라질까봐 늦은 밤 송천천변에 나가 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마지막 밤임을 아는지 더 하얗게 맑은 분홍 꽃잎들을 흔들어대는 그 벚꽃잎들이 가슴 안으로 날려들었다. 그리고는 며칠 간간이 쏟아지던 봄비에 떨어져 그렇게 또 길을 떠났다.

수년 간 세상사에 묻혀 사느라 꽃을 보아도 그리 큰 감흥이 일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벌써 2년에 이르도록 코로나19의 사슬에 갇혀 대인관계도 소원해지고 나들이도 못하다 보니, 물처럼 공기처럼 함부로 보낸 그 흔한 일상들이 너무도 그립고 소중했다. 길 가 풀숲에 올망졸망 말없이 핀 민들레며 제비꽃이며 별꽃이며 키 작은 꽃들이 내 눈길을 멈추게 하고, 천변의 벚꽃, 수양버들꽃, 백목련, 자목련, 조팝꽃, 이팝꽃도 다 내 눈 안에 들어왔다.

그렇게 봄꽃을 따라 길을 가다보니 한 보름은 늦게 핀다는 진안 마이산 벚꽃 길에 다다랐다.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이산 가는 길목의 황토밭 너머 야산 등성이에는 여기저기 흰분홍 산벚꽃들이 마치 파스텔 가루를 흩뿌려놓은 듯, 이제 막 새잎 돋은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연녹색 어린잎과 어울려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로 담겨 있었다. 올해는 더 급히 볼 이가 있었는지 열흘이나 일찍 얼굴을 내밀고는 마이산 탑사 가는 길가에 줄을 지어 늘어서서 빗방울을 매단 채 너무도 곱게 피어 있었다. 그런데 그처럼 아름답게 지리산 천왕봉 눈꽃마냥 그 담분홍 벚꽃잎이 하늘하늘 흩날리는데 구경꾼들이 드물었다. 너무 한적했다. 드문드문 하나 둘, 셋, 넷, 사람 수를 셀 수 있을 만큼의 몇 안 되는 나들이 손님들이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가끔 벚꽃나무 앞에 멈춰 서서 카메라를 당기거나 익숙하게 입을 다물고는 그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들 사이로 높은 골짜기에서 콰르르 돌돌돌돌 흘러내려 오는 계곡 물소리가 또 한 번 마이산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사실 계곡물소리는 자장가로도 긴요하게 사용될 만큼 최고의 심신 안정제이다.

꽃이 피었다. 저만치 진달래도 피어 있고, 때를 잊은 철쭉도 피어 있고, 라일락도 피었고 장다리꽃도 피고, 황토밭 과수원에는 선분홍 다홍빛의 복숭아꽃이 만개했고, 달빛 머금은 배꽃도 허옇게 피었다. 2년 전 같으면 한밤중까지도 어깨를 부딪칠 만큼 상춘객들이 붐비고 벚꽃이 최고로 만개하는 주간에는 이삼일 연속 그즈음 제일 잘 나가는 트로트 가수들이 초청되어 그 노랫소리가 암마이봉, 숫마이봉, 탑사, 은수사를 지나 전 진안고을을 울렸다. 벚꽃축제 공연장 주변 푸드코너 부스에는 진안산 특산품 재료로 만든 인삼튀김, 표고버섯전, 해물파전, 능이버섯 삼계탕 등 감칠맛 나는 먹거리가 이 고장 막걸리와 더불어 상춘객들의 입맛까지 제대로 붙잡아서 몇만 명의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길게 줄을 지어 셔틀버스를 기다렸었다. 그런데 작금에는 이 아름다운 마이산 벚꽃터널에 사람이 별로 없다. 아마 몇십 년 만에 처음일 것이다. 관광지 내 벚꽃이 그처럼 싱그럽고 호화로운데 구경꾼들이 없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모두 그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이다.

벚꽃길을 따라 마이산 탑사 입구를 들어서니 왼쪽으로 어깨를 내민 마이봉의 신비로운 타포니(Tafone) 작은 동굴들이 한 입 베어 문 잘 익은 과일 등처럼 둥글둥글 들어가 있고, 그 언저리에 길게 줄을 지어 키 작은 불상들이 경건하게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저절로 발길이 멈춰지고 그 작은 불상들을 향해 두 손이 모이고 소원이 빌어졌다. 그 기도만으로도 오늘 벚꽃 길을 따라 이 마이산에 온 보람이 느껴졌다. 오른편에는 시누대 잎 넓은 댓잎들이 군락을 이루며 산자락을 덮고 있고, 오래된 마이산의 겨울 정경과 봄 풍경 사진이 기념품가게 앞에 귀하게 모셔져 있었다. 무작정 휴대폰을 꺼내어 그 귀한 사진들을 담았다.

4월의 꽃, 벚꽃들의 향연이 막을 내리고 먼 산에 산목련, 산도화, 이화, 그리고 볼 붉은 홍도화가 한 폭의 수채화로 일상에 지친 우리의 눈길을 머물게 하고 있다. 아직도 코로나19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한 번쯤 4월의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색색의 봄꽃들을 보면서 산골짜기에서 돌돌돌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소리도 들으면서 심신을 힐링시켜 힘들지만 그래도 이 아름다운 봄날을 건강하게 보내보자.

정영신<前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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