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파괴와 죄의 대가
탐욕과 파괴와 죄의 대가
  • 서정환 전북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이사장
  • 승인 2021.04.08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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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오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여기저기에서 외치는 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핸드폰을 통해 어느 곳에서는 확진환자가 몇 명이 나왔고 어디는 무슨무슨 조치를 했다는 등등 코로나19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발생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코로나19다. 겨울이면 으레 유행하는 독감 정도겠지 하고 방심했는데 날이 갈수록 우리를 공포와 불안의 수렁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역동성과 활력성을 급속히 상실한 채 고립 속에서 간신히 버티며 생존하고 있다. 일 년이 넘게 코로나로 인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선택의 자유가 배제된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였다. 기본적인 생활과 먹고사는 활동이 금지당하는 방역 제한기간이 지속되면서 우리들의 인내는 한계점에 다다랐고,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참여 동력도 점차 떨어지는 형편이다. 국가적인 재난에 온 국민이 코로나 퇴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조금만 틈을 보이면 뒤통수를 치며 나타나는 코로나. 좀 잠잠해 지는가 하면 얼굴을 불쑥 내밀어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사회 전체가 신음하는 사이, 먼 미래의 가상현실에서 첨단과학 문명으로만 생각했던 기술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대면문화에서 비대면문화로 바뀌고 있다. 정보에 대한 놀라운 신속성과 확장성이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급속히 바꾸고 있다. 원격근무를 위한 재택근무가 일 년여 지속되면서, 밤늦도록 고층빌딩마다 불야성을 이루던 사무실들이 깜깜해지는 등 수많은 분야에서 연쇄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까지 살고 있던 삶의 방식이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어 우리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힘센 사람이나 영리한 사람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민감한 사람이다.”라는 다윈의 말이 떠오른다. 여태까지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경쟁구도의 사회였다면 이제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빠른 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 백신으로 집단 면역체계가 구축된다 하더라도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고 원격근무가 보편화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간의 간극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격이란 만나지 않고도 비대면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원격회의, 원격진료, 원격수업 등 원격시스템의 인프라가 구축되면 도시에 살지 않아도, 직장에 가지 않아도, 단체나 조직의 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개개인이 혼자 사는데 불편이 없는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아는(앎) 만큼 다가오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세상은 나를 위해 흘러간 강물을 되돌려 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를 대비해 무엇을 준비한단 말인가. 백신만 믿고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들은 이미 코로나19 치료방법을 잘 알고 있다. 간단한 일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잘 돌보면 되는 일이다. 참 간단한 일이다.

결국 멈출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과 자연을 파괴한 죄의 대가로 벌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서정환<전북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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