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 기획> ‘행복한 장호농원’ 정창영·김영하 부부
<귀농귀촌 기획> ‘행복한 장호농원’ 정창영·김영하 부부
  • 정읍=강민철 기자
  • 승인 2021.03.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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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 정읍시 구룡동으로 귀농한 정창영(56)·김영하(57) 부부.

이들 부부는 귀농 이후 ‘행복한 장호농원’을 운영하며 부지런하고 소탈한 귀농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정창영 씨는 안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다수의 삶을 사는 동안 도시의 생활에 염증을 느껴가고 있을 즈음 나는 자연인이란 TV 프로를 보고 자연인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귀농을 하게 된 계기와 정읍을 택한 이유는요?

 정창영 귀농인은 안양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게 좋아 말 짓도 많이 하고 유흥에 관련된 일들을 주로하고 살다 1998년도에 서울 목동으로 이사 가서 실내포차를 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대형면허를 따서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10여년정도 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게 좋았는데 그게 가장 힘든 정도로 시골에서 누구에게 구속받지 않고 홀로 조용히 살고 싶었다.

정읍으로 귀농하게 된 계기는 동반자(김영하)의 고향이 정읍이었다.

귀농할 마음을 먹고 햇빛 즐기는 농부 양현두 귀농인(처남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백향과(패션프루트)를 짓는 농장모습을 보니 멋있어 보여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땅 사서 집 짓고 귀농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2016년 3월에 정읍으로 와서 전북귀농귀촌학교에서 160시간의 교육을 받고 수료를 했다.

처음에는 진짜 아무 계획 없이 귀농해서 농사만 지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귀농자금을 받아 3천여평의 땅을 사들이고 창업자금으로 집을 지었다.

▲처음 선택한 농작물은 어떤 것이고 잘 되셨나요?

 첫 농작물은 노지 1천7백평에 오디와 아로니아를 심었다.

그리고 집앞에 3평 냉동고와 하우스 한 동을 지었다.

하우스 안에 파, 부추, 상추 등을 심었다.

막상 농작물을 심고 났더니, 그 후에 어떻게 할지 참 막막했다.

심어놓은 작물들이 시들시들해서 무슨 약을 어떻게 살지 몰라 부인이랑 같이 농약을 사러 같다.

농약을 사러 간 곳에서 “귀농을 해서 성공하기가 참 어렵다”며 채소농사에 성공한 사람을 소개해 줬다.

소개해 준 농업인이 농작물을 심어놓은 곳을 보고 첫 마디가 “자네 시골에 와서 1년에 수입이 얼마나 되면 살 수 있겠는가”였습니다.  

정창영 귀농인은 “3천만원은 벌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답변에, 멘토가 “자네 이 농작물에서 3천만원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이 농작물로는 그런 수확을 얻지 못한다”며 “오디, 아로니아, 하우스에 있는 농작물 다 갈아 없을 자신이 있으면, 갈아 없애고 연락해”라고 말하고 가셨다.

정창영 부부는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저희가 그동안 힘들게 심은 농작물을 없앨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며 “하지만 살려면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아 그날 다 뒤 없고 전화를 드렸더니 다음날 아침에 바로 오셔서 관리기로 고랑을 따고 파종기로 얼갈이배추, 열무를 두 줄을 심고, 한 줄에는 애기상추를 심어주고 물을 주라고 하고 이대로 놓아두라”고 했다.

“3일 정도 지나 4일째 되는 때 싹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째 본잎이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 약통에 약을 타가지고 오셔서 약을 쳤다. 20일쯤 지나서 잎이 풍성해져서 농약잔류 검사를 받고, 23일째 새벽에 오셔서 뽑는 방법, 봉투에 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로컬에 납품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 한 동의 하우스에서 1백40만원 정도의 수확금(28일)을 만졌다”고 첫 수확의 기쁨을 회상했다. 

▲지금 10여동의 하우스로 다른 농작물도 많이 키우게 된 계기와 성공 비결은요 

정창영 씨는 “새로운 멘터가 되신 분이 여름에는 얼갈이 이런 것들은 돈이 안 되니, 씨 없는 수박을 심어야 한다”며 모종을 시키고, 물 호수는 땅 밑에 몇 센티 간격으로 지어야 하는지 다 가르쳐 주고 가서 그렇게 심고 수확해 3백50만원 가량의 돈을 벌었다.

그리고, 아로니아, 오디 밭을 없애고 심은 배추가 겨울에 수확을 추가로 얻어서 첫 농사짓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더 안정적인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하우스를 지어야 한다며 작목반에 들어가라고 했다.

작목반에서 7동을 지원받고, 로컬푸드에서 1동, 직접투자 1동을 추가로 지어, 그전에 있던 1동을 포함해 총 10동의 하우스가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 해 씨 없는 수박농사를 많이 지었다.

씨 없는 수박은 12브릭스만 나와도 좋다고 하는데 13.6브릭스가 나와서 수박농사 한지 두 해 만에 대상(2018년)을 수상한 경력도 생겼다.

하우스가 많아져 멘토와 상의해 본 결과, 하우스마다 다른 농작물을 심기로 해 당근, 무, 대파, 감자 등을 심었다.

농작물들을 주기적으로 심는 법과 대처법을 알려주셔서 따라했더니, 뭐하나 멈추는 게 없이 점차 계속 수확을 할 수 있어서 안정적인 농부로 성장한 계기가 됐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멘토의 역할이다 며 안정적인 귀농인이 되기 위해서는 멘토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 씨는 “2020년은 9천만원정도의 수익을 만들었다. 첫해 목표인 3천만원이 5년만에 3배가량 늘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멘토에게 고맙다며 지금도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제일 먼저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 그리고 다른 귀농인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요?

“니 눈에 맘에 안 들면 버려, 니 눈에 맘에 드는 것 만 팔아”라는 멘토의 말씀을 아직도 새겨들어 농작물이 현 시세가 비싸더라도 맘에 안 들면 절대 안 판다.

안정적인 귀농인이 되기 위해서는 5년이 지난 지금이 고비인 것 같다. 귀농자금은 5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6년째부터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그래서 1년에 1억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빚 갚고 생활할 여력이 생긴다. 

새벽에 일어나 농작물에 이상이 없는지 하우스 온도체크하고 둘러보며 공들여 키운 좋은 상품을 수확해서 로컬과 시장에 내다 팔아 싱싱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소비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행복이다.

비록 몸은 조금 더 움직이더라도 누구에게 구속 당하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서 가족들과 동네 분들과 행복하게 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귀농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귀농은 쉽지 않다. 돈 있어서 귀촌한 사람들은 공기 좋고 여유 있는 삶을 수 있어 어찌할 줄 모르겠다.

하지만 농사로 돈 버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채소류나 특작류는 수입이 조금 낳지만, 베리류는 모험이 따른다. 1년에 한번 수확하는 제품이 잘못되면 그다음 해 1년 동안 생활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첫해 베리류에서 채소류와 특작물로 변경했다.

조금 더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직영판매도 계획하고 있다.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멘토를 잘 만나야 한다.

농사짓는 방법만 배우는 게 아니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도 잘해야 한다.

볼 때마다 인사를 잘하면 귀농해서 열심히 산다며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주변 분들과 친해져야 오순도순 어울려 사는 시골인심을 배울 수 있다.

기존에 계신 분은 내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귀농인은 그분들의 도움이 절실할 경우가 많다.

귀농을 하고 싶은 분은 많은 계획과 준비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멘토를 잘 만나야 한다.

정읍=강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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