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얼굴] <104> 金大中씨(김대중)...익산의 밤나무 篤林家(독림가)
[자랑스런 얼굴] <104> 金大中씨(김대중)...익산의 밤나무 篤林家(독림가)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1.03.20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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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땅 밤나무 가꿔 넉넉한 삶

“나이도 많이 든 사람이 신문에 난다니까 부끄럽습니다” 밤나무 박사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金大中씨(62·익산군 여산면 여산리 산17번지)는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일제때 중학교를 나와 고향인 全南 광양에서 국민학교 교사를 한 金씨는 취미로 경제림인 밤나무 재배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것이 결국 교사생활을 청산, 전북 지방에 노는땅이 많다는 말을 듣고 이곳 礪山리에 정착한것은 1969년도 부터이다.

 金씨가 한해 올리는 밤 수확량은 다른 재배농가가 1ha당 평균 4천kg에 머무르는데 비해 5천kg까지 거뜬히 올려 全北지방은 물론 밤나무 주산지인 慶南 하동과 광양 그리고 忠南 공주 부여에서까지 金씨의 밤나무 묘목은 인기가 높다는 것이 益山군 산림 당무자들의 말이다.

 밤나무는 신품종 가운데 우량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金씨는 “행정당국에서 추천하는 품종보다는 평소 일본책자를 통해 얻은 우수품종인 出雲(출운), 玉造(옥조), 由利(유리) 등 3대품종을 사다 주로 재배해 단위 수확량으로는 전국에서 자신을 능가할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은근히 자랑했다.

 부인 徐玉姬씨(62·서옥희)와의 사이에 둔 5남매를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가르친 金씨는 “젊음을 밤나무에 바치느라 남들처럼 다방이나 술집 한 번 다녀보지 못했다”며 “젊은이들이 경제림에 관심이 적은 것을 볼 때 후세영농인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오늘의 농촌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글 김화탁·사진 김영호
 옮긴이 김재춘
 1989년 4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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