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치료
문학 치료
  • 김동수 시인/(사)전라정신연구원장
  • 승인 2021.03.1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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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러나 ‘생각’이 ‘생각’에만 그치고 서로 소통하지 못하면 고립되어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동물, 그러기에 인간은 서로 자신의 감정과 정보를 교류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임금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복두장이가 그 사실 (진실)을 발설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되자 어느 비 오는 날 도림사 대나무 숲에 구덩이를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사실을 발설함으로써 병이 나아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경문대왕 편)

괴테가 쓴 『젊은 벨텔의 슬픔』도 실은 괴테 자신의 실연(失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젊은 시절 베츨라 지방 고등 법원에서 일할 때, 친구의 약혼녀를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죽음 직전에 쓴 실화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해 죽을 수밖에 없던 괴테가, 자기 대신 소설 속에서 주인공 벡텔을 자살하게 함으로써 현실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소설 속의 벡텔은 죽고, 현실의 괴테는 살아났다’는 유명한 화두가 널리 회자되어 문학의 치유 기능을 대변하기도 하였다. 인간은 이처럼 어떠한 형태로든지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감정의 실제를 전달하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 없는 소통의 동물이다.

용변(用便)이 생리적 배설이듯 문학은 정신적 앙금의 정화다. 문학(독서와 글쓰기)이 우리의 삶에 질서와 감정의 분출구를 마련하여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나서 후련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 해도 그 속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 들어 있고, 그것을 읽는 가운데 동류의식을 느껴 위로와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가을과 여학생 한 명이 내 연구실을 찾아 와, 대뜸 “교수님, 저 외로워” 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다가, 평소 유달리 우울해 보였던 모습이 떠올라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라는 시를 꺼내 주었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전문

시를 읽고 난 후,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롭고, 생명을 가진 것치고 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것은 없다” 그래서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했다. 그랬더니 “ 교수님, 인제 됐어요” 하고 밝아진 표정으로 연구실 문을 나갔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를 통해 그녀는 어느새 힐링이 된 것이다. ‘외로운 것’은 자기만이 아니라 ‘삼라만상에 외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통찰, 곧 자아와 세계와의 정서적 동일시로 그간의 심리적 갈등이 해소(정화)된 셈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억압 심리를 은유나 상징으로 포장하여 표현한 경우가 많다. ‘환자가 자신의 자존심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로 과장과 왜곡, 흥미유발을 위한 이차 가공 등 기술적인 언어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꿰뚫어 해독하는 것이 ‘시 치료’, 곧 ‘문학 치료’이다.

자기와 닮아 있는 글을 읽게 하거나, 자기 안에 내재된 불안과 고통을 글로써 표현하는 감정의 전이와 공유로 자기의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심리적 고통을 소산(clean up)시키는 정신의학적 치료(abreaction)가 독서와 글쓰기 과정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김동수<시인/(사)전라정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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