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도 ‘부캐’를 갖자
정치인도 ‘부캐’를 갖자
  • 이용섭 전북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 승인 2021.03.02 16: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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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하여 ‘어묵 정치’를 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여야 입후보예정자들이 민심잡기 행보로 남대문시장을 방문해서 어묵을 먹는 것을 빗댄 말이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선거 때마다 계속 반복되었고 전형적인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시장을 방문해서 어묵을 먹고 생선을 사는 것이 선거에 정말 도움이 될까?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입후보예정자는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정당에서 입후보예정자로 확정되었거나 거론되고 있는 20여명의 홈페이지와 블로그 등을 검색해봤다. 전통시장, 지역의 주요행사장, 회원이 많은 단체와 종교시설을 방문하는 등 지역구 활동상황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그동안의 정치적 활동상황과 언론인터뷰 내용이었다. 마지막 순서가 선거공약이 있었는데 무엇을 하겠다고 선언을 한 정도에 불과했다. 언제까지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또 어떤 문제점이 있고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그리고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자기 활동상황 보여주기식이다.

보궐선거의 특성상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 짧고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자신을 알려야 한다는 입후보예정자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지 못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발로 뛴다고 해도 지역 유권자를 만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코로나19로 만나는 자체가 어려운 상황 또한 많다. 더 어렵게 하는 것은 만나는 사람이 다 찍어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 있다.

선거는 후보자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움직이는 것이다. 후보자가 할 일은 유권자가 움직일 수 있도록 마음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즉 후보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나의 분신처럼 함께 뛰어줄 유권자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 방법이다. 혼자 발로 뛰는 것보다 나를 대신해서 백 명이 뛴다면 백 배의 효과가 있을 것이고 천 명이 뛴다면 천 배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후보자는 자신을 대신해서 유권자가 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유권자라는 ‘부캐’를 갖는 것이다.

지난해 한 방송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유명한 MC가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면서 ‘부캐’가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많은 연예인이 ‘부캐’로 활동하고 있다. ‘부캐’는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온라인 게임에서 본래 사용하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후 일상생활에 사용되면서 평소 나와 다른 새로운 모습이나 행동을 할 때를 말한다.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서 평가받고 성장한다. 내가 한 일과 할 일을 자랑하는 것은 자신의 입장에서 선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공약이라도 유권자가 공감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요즘 핫한 이슈인 주택문제를 예로 든다면 전문가나 선거캠프에서 정책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은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는데 부족함이 있다. 선거공약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집을 가진 사람과 집이 없는 사람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을 만나보고 지역별 특성도 알아보는 등 이해당사자인 유권자들의 생각부터 들어봐야 한다. 그다음에 할 일이 결과를 가지고 문제점을 찾아 유권자가 원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유권자를 만나고 정책을 마련하는 모든 과정을 소상하게 홈페이지에 올리고 그 과정마다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이러한 수고로움의 과정들이 유권자에게 소통하고 있다는 공감대와 진정성을 느끼게 할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나 결과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지지할 것이다.

그래서 유권자라는 ‘부캐’가 필요하다. 내가 유권자가 되어봐야 유권자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권자가 본캐릭터고 정치인이 부캐릭터인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이용섭 <전북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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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정 2021-03-03 10:11:38
사회가 발전하고 유권자의 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정치가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단면에 대한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