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김온리
영화를 보는 내내
아내라는 말이 참 좋았다
며칠 전부터 헐어있던 입안을 달래 줄
흰죽 한 사발이 그리웠던 참인데
아내라고 중얼거려 보면
뜨끈해진 입안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의 아내인 나는
누군가의 뒤꼍인 사람
그러므로 비가 내리는 메가박스 뒷골목에서
꽃무늬 우산을 쓴 아내를 기다려 보았다
아내를 불러보는 동안
누군가가 기다리는 사람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반쯤 젖은 채 어깨를 부딪쳐 갔다
눈을 감으면
나를 기다리는 무수한 아내
없으면서도 있는, 이마를 짚어주는 아내
누군가의 뒤꼍이 될지언정
누군가의 슬픔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녹색으로 바뀐 건널목을 급히 뛰어가는
아내를 붙잡지 않았다
<해설>
설 명절은 잘 쇠셨는지요.
이 시는 프랑스 작가 ‘안나 가발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를 보고 쓴 시입니다. 영화의 제목만으로도 코로나로 지금 힘든 우리에게 위로를 전해 주는 느낌이 듭니다. 주인공은 세일즈맨으로서 아버지의 죽음을 겪게 되면서 가족들을 더 챙기며 살아가던 중 우연히 첫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젊었던 시절 자신이 연극을 하면서 꿈과 희망을 노래하던 그 지나가버린 시간과 마주 하며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아내’란 어떤 의미일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를 일컫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아내란 언제나 따뜻하고 온화하게 남편을 보좌하는 조력자로서 온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한 남자의 아내인 시인 또한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이 유난히 기운이 없어 보일 때는 술친구도 해주고, 몸이라도 아프면 죽을 끓이고, 이마에 손 얹어주면서 기꺼이 남편의 뒤꼍으로 살아가고 있네요.
그러나, 왠지 으스스 한기가 드는 날, ‘헐어있는 입안이 뜨끈해져 외로운 날’,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죽 한 사발 끓여놓고 기다리면 좋겠다’라는 생각을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나도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시간 맞춰 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놓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소박한 꿈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