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1> 프롤로그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1> 프롤로그
  • 이강희 작가
  • 승인 2021.01.31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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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잔의 술로 세상 모든 근심을 털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절, 전북도민일보가 ‘맛있는 맥주 인문학’의 저자 이강희 작가를 초대합니다. 술 이야기를 따라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여정이죠. 이름하여 ‘새·문·술’. 이강희 작가는 앞으로 최초의 술부터 지금의 술까지 술과 술이 만들어낸 역사이야기는 물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술을 접하면서도 몰랐던 뒷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줄 예정입니다. 술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이 코너를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주>  

 낮 시간에 데워진 온도가 무색해지는 해질녘의 도시는 차갑다. 차량의 헤드라이트와 엔진소음이 가득한 도로는 양옆에 사람들이 퇴근을 서두르는 인도를 두고 있다. 인도를 따라 즐비하게 놓인 건물에서는 수많은 상가들이 토해놓은 각양각색의 불빛들이 가로등보다 밝게 빛난다.

  사람들의 발걸음과 차량행렬은 퇴근을 서두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러 어디론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일 수도 있다. 물건을 팔기위한 상점들이 가득한 대로변을 뒤로하고 찾아간 골목길은 많은 이들의 배를 채워줄 음식점부터 그들이 모여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카페와 주점들이 즐비하다. 어느 곳이든 각자의 지인과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음식(飮食)을 나누며 오랜만의 만남을 반가워하거나 직장에서 일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들이 앉은 거의 대부분의 테이블에는 음료를 담은 잔과 병이 있다. 사람보다는 투명한 유리와 녹색, 갈색 병의 향연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병들이 테이블을 장식하고 있다. 각 병에는 우리가 알듯이 다른 알코올 도수와 주종의 술이 담겨있다.

  이 술들은 맛보다는 반주개념의 술이다. 맛보다는 취하기 위함이나 대화의 윤활제 같은 역할을 위해 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런 개념정도에서만 만족해도 됐던 산업화 시대와 국민을 취하게 만들려던 군사정부는 사라졌다. 이제 술도 품격을 나타낸다. 주종과 가격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술을 만든 재료와 장소,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냐에 따라 술을 내놓은 사람의 품격과 자리의 품격, 같이 마시는 사람들을 대하는 격이 결정되는 시대다. 대표적인 예가 와인이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많아지며 와인에 대한 여러 스토리가 전해졌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는 게 아니라 문화를 마시는 것’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아쉬운 것은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이어져왔던 전통적인 술보다는 외부에서 전해진 비어와 와인, 위스키로부터 생겼다는 거다.

  어엿하게 고대로부터 이어져왔던 술 문화가 있었고 오늘날의 사케가 있을 수 있도록 당시의 과학을 왜에게 전해주었던 우리의 술 문화가 있음에도 방송과 언론이 전해주는 오류가 풍부한 지식들에 의해 우리의 사고가 젖어있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외국의 술에 대한 동경과 사대주의에 입각한 술 문화가 자리를 잡도록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대원군의 척화비에서 보듯 외국 술에 대한 반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소주가 800여 년 전 몽골의 고려침공에서 시작된 것처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우리가 마주하는 술에 적응하면 된다. 또, 우리의 삶에 안착해서 우리가 즐기면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즐기려고 마주하는 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약간이라도 알고서 술을 마신다면 같이하는 사람들과 그 자리가 좀 더 풍성해질 것이다. 그리고 상술에 휘말려 우리에게 왜곡되게 알려진 많은 이야기들의 진실을 하나씩 하나씩 여러분들에게 전달해보려고 한다. 술자리에서 잘못된 지식을 뽐내는 섣부름보다 잘못된 거짓을 함부로 떠벌리지 않는 현명함을 얻을 수는 있을 거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어려운 미생물학적 지식과 발효를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술자리에서 놓칠 수 있는 2~3%를 글로 풀어가려고 한다.

  미묘함이 있지만 즐거움을 주는 정보와 생각의 관점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 비어(Beer)만 2~3만여 종류가 있듯이 여러 종류의 술에 대한 엄청나게 다양한 술의 엄청나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 이야기와 정보들이 여러분의 술자리와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든 품격을 높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많은 술을 마시며 폭음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웃으며 즐기는 술 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

  취하려고 마시는 술보다 대화를 즐기기 위해서나 반가움을 위해 마시는 술 문화를 만들어 후세에게 전해주는 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글 = 이강희 작가

 

 ◆2019년 세종도서 선정된 ‘맛있는 맥주 인문학’을 쓴 이강희 작가는 금융과 술을 주제로 지면과 화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외에 도서관과 기업체에서 술과 관련한 인문학 강연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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