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 가까이 맞춤전문 양복 고수 ‘장원용 미복사 양복점 대표’
반백년 가까이 맞춤전문 양복 고수 ‘장원용 미복사 양복점 대표’
  • 이방희 기자
  • 승인 2021.01.25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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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인 전북도내 유일 1급 기능사 자격증 소유
중국 출장 고위관료 양복 맞춰주기도
사진=이원철 기자

“혼을 담아 한땀 한땀, 한올 한올 손끝에서 베어나오는 섬세함과 정성이 모이고 모여 한벌의 양복이 탄생되는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 입니다. 여기에 멋진 수제 양복을 입고 면접을 잘보아 회사에 입사했다거나 혼례를 잘 치렀다며 감사 인사를 오는 고객들을 대할때 만족감은 하늘을 찌르죠”

노동부가 발급한 도내 유일 국가공인 1급 기능사 자격증을 자랑삼아 50년 가까이 전주에서 수제 양복을 만드는 ‘미복사 양복점’의 장원용 대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980년에 획득한 자격증은 당시 전주농고(현 생명과학고)에서 필기시험을 보고 광주에서 실기시험을 보는데 같이 시험을 치른 동료들은 모두 고배를 마셔 재능을 인정받았다.

어느 업종이나 쟁이들은 나름의 전통과 자존심, 전문성, 장인정신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수제 양복은 한벌 한벌이 모두 동일하거나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길이가 없기에 사실은 한벌 한벌이 다 독특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기성 양복이 시장을 석권하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가진 회사 제품을 선호하는 환경에서도 소위 손맛에는 나오는 장인 정신이 오늘의 ‘미복사’ 장원용 대표를 만들었다.

그래서 전주시 완산구 전주시청 앞 오거리 광장 부근에 있는 장원용 대표의 ‘미복사 양복점’에는 맞춤 양복을 고집하는 고객들이 여전히 찾고 있다.

줄자를 이용 어깨, 허리, 바지 길이 등을 재고 고객이 양복 재질과 색상, 모양 등을 고르면 독특한 모양의 자를 이용 옷의 모양을 갖추어 간다. 그리고 재단·재봉 등의 과정을 통해 한 작품이 탄생된다.

장원용 대표는 “미복사 양복점을 한 번도 안 찾아온 손님은 있어도 한번만 찾아오는 고객은 없다”라며 “한번 찾아온 고객은 평생 고객으로 남는다”며 자신만의 솜씨를 자랑한다.

장 대표는 “전주에서 살다가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사를 갔더라도 꼭 미복사를 찾아 양복을 맞추는 고객이 아직도 많다”며 “그 어려웠던 시절에 양복을 빌려가 공무원 면접을 보고 합격 한 후 고마움에 수제 양복을 맞춘 고객이 있는데 평생 단골 고객으로 지내다가 이제 공무원으로 정년을 하신 분도 많다”고 말한다.

전주로 발령받은 타 시·도 출신 기관장들은 미복사의 맞춤양복이 마음에 든다며 후임 기관장에게 소개까지 해주고 떠나 그 명성을 인정받았단다.

장 대표의 장점은 섬세함이다.

요즈음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기계로 제조한 기성양복은 자로 잰것보다 정확하게 순식간에 양복으로 만들어 진다.

그런데 사람은 모두 체형이 달라 그 체형에 따라 양복이 제대로 옷매무새를 갖추어야 한다는게 장 대표의 지론이다.

장 대표는 “사람은 양팔의 길이와 두께가 같은 것 같지만 실상은 같지가 않으며 나이가 들수록 그 차이는 벌어지게 된다”며 “따라서 양복도 고객 체형에 맞게 어깨, 팔 길이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와이셔츠도 양복에 맞춰 만들어야 제대로 된 모습을 자랑하게 된다”며 기성양복과는 질적으로 우수한 맞춤양복의 특성을 설명했다.

장 대표는 “패션과 유행은 항상 돌고 돈다”며 “양복도 마찬가지로 기본은 절대 바뀌지 않는 가운데 10여년의 주기를 갖는다”고 귀뜸했다.

특히 장 대표는 전북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온 한 중국 학생의 소개로 중국 베이징, 소주, 천진을 방문해서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옷을 맞춰주고 돌아온 일화를 소개하며 한때 국제적으로 활동(?)했던 모습을 밝히기도 했다.

장 대표는 세번이나 중국으로 출장 중국 성·시의 공무원·당 간부나 경제인들의 양복을 맞추어 주었다.

장 대표는 “기성복보다는 맞춤양복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던 70∼80년대만 해도 전주시내에 맞춤 양복점 업체 수는 100여 곳이 넘었으나 요즈음 순수 맞춤 양복을 하는 곳은 대부분 사라졌다”며 아쉬워 했다.

또 “앞으로 3년이면 양복 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지 50년이 된다”며 “사라져가는 업종으로 분류된지 오래이기에 수제양복 제조과정과 기술 등을 자료나 영상으로 남겼으면 하는 소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전북도에서 시상하는 명인명장 분야를 더욱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그래서 수제양복의 명맥을 이어갔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고 강조했다.

50년 가까이 내조하면서 여성으로써의 감각과 섬세함으로 도움을 준 부인 김보남씨는 “좋은 섬유재질이 많이 나와 양복 재단 기술이 재질을 못따라가는 시대가 되었다”며 “키가 큰 고객이 찾아와 ‘나는 키가 커 기지가 많이 들어가니 가격을 더 받아라’고 말하는 고객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이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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