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관 시인의 10년만의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
서흥관 시인의 10년만의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1.01.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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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시인이 애틋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목소리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창비·1만3,000원)’는 1985년 시인으로 등단 이래 의사이자 시인으로 꾸준히 활동해온 서홍관 시인이 10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그간 시작활동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사회활동을 해온 시인은 세상에 만연한 고통에 가장 먼저 귀 기울인 이력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덧없는 고통까지 어루만지는 특유의 다감한 시선을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총 5부로 나누어 묶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깊은 성찰이 오늘날 우리에게 믿음직한 위로를 선사한다.

 환자들과의 이야기를 편안한 어조로 풀어놓은 ‘의사의 업적’ 연작 여섯편은 시인이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시인은 진료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시로 표현한 의사-시인이기도 하다. 건강만큼이나 환자들의 삶을 염려하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의사 업적평가에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눈앞의 존재를 허투루 대하지 않으려는 진심으로 안부를 작품 속에 담아낸다.

 소외된 삶과 사물, 우리 사회의 병리적 문제에 천착해온 시인의 시선은 진료실에만 멈추어 있지 않다.

 세월호 참사 때 희생당한 고등학생의 동영상 속 목소리를 받아적은 ‘나는 살고 싶은데’를 비롯해, 앙코르와트에서 학교도 못가고 물건을 파는 캄보디아 소녀들, 학교에 가고 싶어 노동을 감내하는 네팔 소녀, 아버지의 체취가 그리워 우표를 뜯어 맛보는 김구 선생의 아들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 인물들에게 시인의 시선이 멈춘 공통점을 찾는다면 안타까움이다. 그 안타까움이라는 마음이 있기에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뿐 아니라 이국의 사람들, 고대도시 노예가 겪는 일까지도 시인에게는 모두 현재의 고통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서홍관 시인은 “지난 10년 동안 그 많은 사건을 겪고도 빈약한 시집 원고를 십년이나 걸려서 들고 왔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게으르다고 자책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이 숱한 격동의 세월 동안 잠자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변명으로 세워본다”며 “우리의 시가 시대를 증언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치열하게 문학활동을 해야 한다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신작 시집을 출간하게 된 소회를 밝혔다.

서홍관 시인은 1958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제의대 가정의학과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센터 의사이며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으로 있다. 1985년 창작과비평사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어여쁜 꽃씨 하나’, ‘지금은 깊은 밤인가’, ‘어머니 알통’, 산문집 ‘이 세상에 의사로 태어나’, 옮긴 책으로 ‘히포크라테스’, ‘미래의 의사에게’ 등이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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