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촌 아카이브북 2000-2020’을 통해 돌아본 변화상 ‘과거와 미래를 잇다’
‘선미촌 아카이브북 2000-2020’을 통해 돌아본 변화상 ‘과거와 미래를 잇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1.01.1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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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도심에 위치한 선미촌은 더 이상 과거의 성매매 집결지가 아니다. 매일 아침부터 선미촌의 붉은 등이 켜지는 밤에도 불을 밝혀두고 있는 책방과 마을사 박물관이 있고,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도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여느 도시재생사업과는 다른 특성을 찾을 수 있다.

길게는 90년, 짧게는 60년 동안 존재한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의 실태를 드러내고 여성인권운동의 관점으로 선미촌을 변화시켜온 최근 20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참이다.

전주시사회혁신센터 성평등전주가 기획제작한 ‘선미촌 아카이브북 2000-2020’은 선미촌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2000년부터 2020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전북의 여성인권운동가들은 성매매 집결지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는 2007년 10월부터 정기적으로 토론회와 집담회를 개최하며 선미촌과 성매매 문제에 대한 다양한 쟁점을 논의해 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지역사회의 주요 의제로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공론화 시키는데 영향력을 끼쳤다.

2011년에 들어서 서노송동 일대에 구도심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며 선미촌 폐쇄 문제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선미촌이 서노송동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의 가치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시켜야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것이다.

이에 2014년 2월 선미촌 집결지 해체와 도시재생, 여성인권보호와 자활지원 등을 목표로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가 발족됐다. 이들 협의회를 통해 확장될 수 있었던 젠더거버넌스는 여성인권의 관점으로 집결지 공간을 재구성하면서 집결지 폐쇄를 현실화시켜 나갔다. 집결지의 실태에 대해 잘 모르거나 막연히 집결지가 없어지면 지역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인식하는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일도 이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단단한 유리벽에 둘러싸인 채 도심 속 외딴 섬처럼 자리한 선미촌에 조금씩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 여성인권운동가들이 있어 지금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에 문화기획자와 예술인들의 다양한 활동, 지역주민의 이야기가 보태지기 시작하면서 선미촌의 오늘이 밝았다.

아카이브북은 이 지난하고 날카로웠던 시간의 여러 풍경을 세밀하게 기록해두고 있다. 성매매 집결지의 폐쇄적인 경계를 함께 허물었던 사회적 기억을 남기는 이 과정은 과거와 미래는 잇는 중요한 다리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책은 크게 3개의 챕터로 구성됐다.

archive 1에서는 선미촌 전이와 전복의 역사를 다룬다. 선미촌 집결지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실천과 모색들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지를 보여준 기록들로, 전주지역 반성매매 운동의 역사이자 젠더거버넌스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archive 2에서는 전주 근대도시의 형성과 선미촌의 변천과정을 담는다. 1930년대 신민지 근대도시의 유곽에서 비롯된 선미촌의 유래와 지금의 유리방 집결지로 변모하기까지의 변천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archive 3에서는 성매매 집결지와 반성매매 여성인권운동을 조망한다. 한국 반성매매 여성인권운동의 시작점인 2000년 군산 대명동, 2002년 개복동 집결지 화재참사와 이로 인해 촉발된 성매매방지법 제정 및 시행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희 성평등전주 소장은 “여성인권이 침해됐던 공간이 여성인권이 실천되어지는 공간으로 바뀌어진 역사는 미래지향적이고 전주시를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성매매 집결지를 성평등한 시민의 공간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그 역사성이나 장소성을 아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기록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공간에 견학을 오고 인권교육 차원에서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잘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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