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악기 3대째 계승·발전시긴 악기장 ‘서인석 명인’
우리 악기 3대째 계승·발전시긴 악기장 ‘서인석 명인’
  • 정읍=강민철 기자
  • 승인 2021.01.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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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혼 - 명인, 명가를 찾아서
악기장(장구·북 제작)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서인석 명인

 “정읍장구는 하나의 통나무를 토막 내지 않고 통째로 깎아서 울림통이 더욱더 좋아 청아한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 고유의 악기인 장구와 북을 가업으로 3대째 계승, 발전시켜 오고 있는 악기장이 있다.

바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장구·북) 서인석(63) 명인이다.

전북 무형문화재 악기장 서인석 명인이 정읍장구의 우수성을 알리고 수작업으로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호남농악계의 장구·북 제작은 그의 부친 서남규 명인이 본격적으로 시작해 서인석 명인을 통해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3대째 전통기법에 따라 장구·북을 손으로 직접 깎아 만드는 유일한 전승 기능보유자로 ‘정읍장구’로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 있는 서인석 장인을 만나 그동안의 히스토리와 철학, 앞으로의 전승계획과 이루고 싶은 꿈을 들어봤다.

 ◆가업 이어 악기 제작의 길

정읍에서 태어난 서인석 명인은 어린 시절 서영관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명인인 조부께서는 시골마을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고 동네에서 필요한 집수리, 가구(소목) 등을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나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세시풍속을 중요시하셨다.

조부의 악기를 만드는 일을 이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셨던 서남규 부친이 1960여 년도에 현재 110년의 전통이 있는 정읍샘고을시장에 자리를 잡으며 본격적으로 장구·북 제작을 시작했다. 서인석 명인은 유년시절부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아버님의 풍물악기 제작공법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 지금의 실력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3대째 가업을 전승하고 있는 서인석 명인 그동안 각고의 집념 어린 노력과 전통적인 제작기법으로 장구, 북 등 타악기 제작에 독보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장구·북 제작기법과 작품의 예술성은 부친과 함께 출품한 전라북도공예품경진대회,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전국전승공예대전 등의 대회에서 특선, 최우수작품으로 입상하고,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서인석 장인은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님의 악기를 다루고 만드는 모습과 동네 분들과 풍물인들이 모이고, 놀고,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며 “그런 모습들을 보며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농사를 짓는 모습과 풍물패들이 오면 대중들을 모이게 할 수 있는 것을 보며 대단 하구나를 느꼈다”고 말했다.

서 장인은 “악기 만드는 방법을 앉아서 배워본 적도 없다. 그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돕다 자연스럽게 열두 살 때부터 도끼 들고, 칼 들고, 대패질 정도는 할 수 있었다”며 “시대는 흘러도 우리 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통기법에 따라 장구와 북을 직접 손으로 깎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기법으로 악기 만들기

3대째 가업승계를 하고, 2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국악기 명가지만 현실은 많이 척박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장구 대부분이 기계로 빠르게 제작된다.

전통기법으로 손으로 직접 나무를 깎고 말리고 만드는데 5년에서 10년은 걸리는 장구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장구와 가격 경쟁이 안 된다.

전통을 고수하고 이어나가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 장인은 “악기를 사러 오는 국악 전공자는 대학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정읍장구 문화재 1호인 아버님 전승장인 일지라도 깔보고 무시하고 내가 배운 것들을 인정하지 않아 세상의 편견과도 맞서기 위해 2000년에는 대학에 들어가 국악을 전공하고 석사과정까지 마쳤다”고 말했다.

서인석 장인은 악기장으로 무형문화재가 됐지만 장구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서인석 장인은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설장구로 두 번이나 장원하고, 김병섭 류 설장구를 비롯해 설장구는 모두 섭렵했다”며 “온전히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웠던 것으로 석사논문을 만들고, 대학교에 다닐 때 장구 장단을 오히려 교수에게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사과정에도 도전하고 싶었지만, 우리나라에는 국악기 제작 박사과정이 없다. 주위 사람들이 일본 유학을 권유했다”며 “일본에는 제작학과가 있다더군요. 그런데 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서 공부하면 우리의 기술을 일본에 주는 격이니 더더욱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전승 방법은

서인석 장인 밑으로 4형제의 아이들이 있다.

4형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돕고 거들면서 성장했다. 모두 장구를 깎고, 연주할 줄도 안다.

“장남이건 막내건 거부감이 없어요. 그냥 늘 보던 일인 거죠. 이게 복입니다. 아버지도 복이시고 할아버지도 복이신 거죠”

하지만 지금은 다들 자기 일들을 하고 있고 바쁠 때면 누구든 언제든지 와서 거들어 주고 있다. 

서인석 명인은 호남우도(전북 정읍) 풍물의 명맥을 이어가는 설장구 연주자로 무형문화재 신청을 계획하고 있다.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원하는 공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정읍은 호남농악으로 유명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정읍은 1920년대 보천교에서 농악을 종교음악으로 지정해 농악 기능인들을 초청해 대대적인 공연을 하는 등 농악 육성발전에 이바지했던 지역입니다.

이후 찬란했던 정읍농악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1980년대부터 정읍의 많은 농악 관계인들이 우도농악에 대한 연구 발전을 이어오고 있다.

정읍농악의 계보를 이어 전통악기 장구를 만드셨던 부친 서남규 명인, 전통의 맥을 잇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서인석 명인, 이들을 통해 정읍장구는 다른 지역보다 뛰어난 장구로 유명하다.

정읍장구의 특징은 하나의 통나무를 토막 내지 않고 통째로 깎아서 울림통이 더욱더 좋아 소리가 청아합니다.

정읍=강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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