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6) 장석주 시인의 ‘첫눈’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6) 장석주 시인의 ‘첫눈’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1.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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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 장석주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이루어졌거든

 뒤뜰 오동나무에 목매고 죽어버려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실패했거든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길을

 맨발로 걸어가라

 맨발로

 그대를 버린 애인의 집까지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끝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첫눈이 온다 그대

 쓰던 편지마저 다 쓰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들에 나가라

 온몸 열어 저 첫눈의 빈들에서

 그대가 버린 사랑의 이름으로

 울어보아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한

 그대의 순결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라

 

 <해설>  

  첫눈이 내리면 나뭇가지에 하얀 첫사랑이 내려앉은 것 같습니다. 지금도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첫 사랑과 이별하며 약속 했던 것이 생각 날 거예요.

  시인은 ‘그대 첫사랑이 이루어졌거든 뒤뜰 오동나무에 목매고 죽어버리라’고 합니다. 아마도 시인은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나 봐요. 첫 사랑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 이루어지 않았다면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길을 맨발로 걸어가서 순결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받으라’고 하네요.

  첫눈, 첫사랑, 처음, 왜 이런 단어들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며 순결했던 십대로 돌아가는 기분이들까요. 언덕위에서 둘이 나란히 발자국을 남기며 걷던 추억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밀려옵니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가, ‘중학교 때 만나던 첫사랑 소녀가 지금 자신의 아내가 되었다고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쳐주었고 어느새 첫사랑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어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첫사랑은 연분홍빛이라느니, 첫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느니, 제 각각 러브스토리를 풀어놓기 시작했어요. 그때 누군가가 일어나 이렇게 건배 제의를 했습니다.

  “첫사랑은 절대 만나지도 말고, 영원히 가슴에 묻어두고 살자고!” 맞아요. 오죽하면 이런 건배 제의를 했을까요. 영원히 가슴에 묻어 두고 싶은 사랑이 ‘첫사랑’일 테니까요. 

 오늘, 우리도 건배합시다. “아름다운 첫사랑을 위하여!”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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