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우리 동네 소비생활
슬기로운 우리 동네 소비생활
  • 김성철 전북은행 부행장
  • 승인 2020.12.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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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전북은행 부행장

 전주에는 ‘가맥’ 문화가 있다. 가맥은 가게 맥주의 줄임말로 지난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서민들은 동네 슈퍼에서 삼삼오오 모여 맥주와 간단한 안주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곤 했었다. 요즘은 편의점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전주의 가맥은 가게마다 직접 만든 안주가 곁들여지면서 전주만의 음주문화로 자리 잡았고 최근 가맥 축제로까지 확장되었다.

 동네 슈퍼는 이처럼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동네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보듬으며 지역 커뮤니티로서의 역할도 함께 했던 것.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동네슈퍼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0식품소비행태조사’에 따르면 가정에서 식품을 주로 구매하는 장소로 동네슈퍼(34.2%)가 가장 많았다. 그동안 부동의 1위였던 대형 할인점은 2위로 내려갔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중소형 슈퍼마켓도 지난해보다 4.0%p 감소했다. ‘재래시장’의 비중은 지난해까지 꾸준히 감소했으나 올해는 13.0%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1.5%p 증가했다.

 응답자들은 식품을 사는 장소로 가격, 거리, 교통, 배달 요인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생활반경이 좁아지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이 몰리는 대형마트보다 가까운 동네 슈퍼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식의 확산으로 주거지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네 상권과 재래시장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에 맞게 진화하는 동네 슈퍼의 변신도 주목할 만하다.

 중소기업벤처부의 스마트 슈퍼 지원 사업은 대기업의 24시간 편의점에 밀려 장시간의 노동과 운영난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동네 슈퍼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마트 슈퍼란 무인점포 운영에 필요한 무인 출입 장비, 무인 계산대, 보안시스템 등 스마트 기술·장비 등을 갖추고 낮 시간대는 사람이, 심야 시간대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혼합형 24시간 무인점포’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18평 규모의 ‘형제슈퍼’는 9년 동안 운영하던 슈퍼를 스마트 슈퍼로 전환해 운영 중이다. 국내 스마트 슈퍼 1호점인 이곳은 스마트 슈퍼로 전환 후 심야 매출 증가와 중장년층 중심에서 20-30대 고객까지 고객층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1호점은 개장한 이후 석 달 동안 일평균 매출이 25.4% 늘었고 2호점도 18.6% 증가했다. 특히 동네 슈퍼는 점주 단독 운영이 많아서 식사나 화장실 문제가 자유롭지 못했지만, 스마트 슈퍼 전환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는 등 삶의 질 향상에도 효과가 있었다.

 중기부는 2021년부터 스마트 슈퍼 본격 확산에 나설 계획이다. 지자체와 협업해 해마다 800개, 2025년까지 4,000개의 스마트 슈퍼 육성을 추진할 계획으로 선정 점포당 스마트 슈퍼 전환비용과 운영법 교육, 경영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

 동네 슈퍼는 쉽다. 카드도 되고, 현금도 되고, 온누리 상품권도 되고, 지역사랑상품권도 된다. 가까우니 많이 사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사고 가볍게 집으로 온다. 대형마트에서 홀리듯 견물생심으로 구입한 물건들로 과소비를 자처했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동네 마트에서 소비는 알뜰하고 슬기로운 소비의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연말연시가 코로나19로 인해 멈춤 상태다. 언택트 시대라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단절이 아닌 인간적 소통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고 정겨운 대화가 그립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이지만 동네 상권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새해에는 동네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책임지는 동네 슈퍼에서의 가맥 한잔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김성철 <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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