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7) 김주대 시인의 ‘풍장’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7) 김주대 시인의 ‘풍장’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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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장’ 

 - 김주대 

 

 바람이 허공에 새겨놓은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리라

 살이었던 욕심을 남김없이 내려놓고

 신의 발을 무사히 만질 수 있도록

 영혼에서 살이 빠져나가는 시간

 바람의 지문을 영혼에 새기는 일이다

 넘치던 말들과 형상을 보내고

 허공에 섬세하게 깃들게 되리라

 꽃잎처럼 얇은 고막이 되어

 지평선에 누우면

 별들의 발소리가 들리겠지

 살을 버린 이성은 비로소 천상을 흐느낄 것이고

 혀가 된 푸른 바람이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는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해설>  

 십여 전에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로 트래킹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가이드를 맡은 셀파(짐꾼)가 네팔의 고승 중에 고승은 사원에는 부처가 없다고 깊은 골짜기에서 고행하는 스님이 있다고 말해서 함께 가 보게 되었습니다.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수행하는 스님 곁으로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터라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습니다. 거친 돌덩이와 자갈밭에서 앙상한 뼈만 보이는 몸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대로 풍장(風葬)을 향해 가는 중이구나 싶었습니다.

 고승이 골짜기에서 그렇게 수행하다 죽으면 그대로 묶어 계곡물에 수장을 한다고 합니다. 이미 육신은 자연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물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네팔이나 티베트에서 행해지는 수장, 조장, 풍장 같은 장례의식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으로 보내준다는 의미겠지요. 특히 풍장은 비바람에 육체가 절로 소멸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인간의 욕심을 우리 몸의 살로 비유하고 있네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누구나 살면서 욕심을 다 내려놓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욕심을 다 내려놓는 방법이 죽음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서글퍼지네요. 더구나 죽음을 앞두고서야 깨닫게 된다니 더 그렇습니다. 

 죽어서 ‘꽃잎처럼 얇은 고막이 되어, 지평선에 누워야만 비로소 들을 수 있다는 별들의 발소리. 그리고 바람이 허공에 새겨놓은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 구절이 지금까지 아프게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보게 합니다. 살아서는 왜 저런 세계를 접할 수 없을까요. 

 왠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근심과 걱정 내려놓고 그냥 풍장의 언저리에 기웃거리고 싶어지네요. 그냥에는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이 그냥이니까요.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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