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完> 누가 나에게 이 길을…
[한 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完> 누가 나에게 이 길을…
  • 최기우 극작가
  • 승인 2020.12.29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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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보다 각색이 더 까다롭다. 원작자의 의도를 거스르거나 문장을 방해하지 않고, 원작이 선사한 감동을 훼손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고전(古典)은 조금 다르다. 저작권이 없어 더 과감한 도전이 가능하다.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앞세웠지만, 고전의 지향이 민심과 일치해 온 것도 큰 이점이다. 무수한 겹과 결을 지닌 고전의 매력에 빠져 작품을 여러 편 썼다. 누구나 뻔히 아는 작품을 뻔하지 않게 다시 쓰는 일. 처음부터 즐거운 작업은 아니었다.

 2005년 마당극 <콩쥐팥쥐>를 의뢰받았을 때다. 구성이나 전개가 다르고, 전혀 딴판인 듯싶다가도 제 줄기를 찾아가는 이야기의 재구성을 꿈꿨다. 개과천선한 최만춘 씨가 배 씨와 재판까지 가면서 이혼에 성공했다거나 남편 따라 연변에 이민 간 콩쥐가 신발 장사하며 잘 살더라, 하는 별스러운 이야기. 팥쥐에게 이복 남매를 만들어 아침드라마보다 더 복잡하게 얽고 싶었다. 그러나 연출의 요구는 원작에 충실! 작가로서는 참으로 심심하고 민망한 일이었다.

 작가는 자신 속에 다중의 인격을 만들고 그 소리에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빛나는 영감을 위해 그까짓 것쯤은 감수한다. 한데, 원작에 충실? 뜬금없고 막막했다. 이 작품을 왜 써야 하지?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하지? 앞산도, 뒷산도 첩첩. 작가를 선택한 내 삶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꽃다지의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1994)가 떠올랐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대학 시절 술자리가 끝날 무렵이면 어느 여리고 따뜻한 친구가 자연스럽게 시작하던 민중가요. 어깨를 건 떼창으로 이어지곤 했지만, 나는 함께 부르지 않았다. 누가 너에게 이 길을 가라고 강요하더냐? 싫으면 하지 마! 노랫말은 부정적으로만 느껴졌다. 눈이 마주치면 시비를 걸었다. 우리가 걷겠다는 이 길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가, 이 길을 말할 만큼 바르게 걷고 있는가, 분명한가, 당당한가, 치열한가… 나의 불안과 절망과 번민은 푸념과 투정과 한탄이 돼 모두에게 생채기를 남겼다. “다짐하는 거 아냐. 그냥 부르는 거야.”라는 어느 선배의 말은 늘 공허했다.

 왜 이 노래가 떠올랐을까? 피식, 웃음이 났다. 누가 너에게 작가의 길을 가라고 강요하더냐? 동료들에게 애꿎게 쏟던 내 처신들이 비수가 돼 돌아왔다. 인과응보. 푸념과 투정과 한탄을 내뱉을 만큼 분명한가, 당당한가, 치열한가…. 그래, 그냥 놀아보자. 심란한 세상사, 사람들과 더불어 한바탕 크게 웃어젖힐 수 있으면 그만이다. 숨넘어갈 정도로 요란한 수식어와 한껏 과장된 신파조는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겠지. 극의 한중간 상쇠가 흥을 몰아 객석으로 뛰어들면 분위기는 더 달아오를 것이다. 어딜 가나 앞자리를 꿰찬 관객의 흥은 배우 뺨치는 법. 어르신 여럿이 일어나 덩실덩실 반겨주고, 부채꼴로 펼쳐진 객석은 배우들이 울고 웃을 때마다 한 몸이 돼 바람처럼 출렁이겠지. 그래, 이만하면 좋을시고. 약주로 불콰해진 중년의 아저씨와 장바구니 든 아줌마, 사탕을 입에 물고도 칭얼거리는 아이, 연신 ‘셀카’를 찍어대는 여고생,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중학생, 손자 업은 할머니, 앞니 빠진 할아버지, 골방에 틀어박힌 미취업자 무명씨, 얇은 월급봉투에 일찍 집에 못 가는 우리의 가장…. 모두가 소중한 내 관객이다. 공연이 끝나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하는 가족의 유쾌한 걸음이나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누군가를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큰 의미다.

 건강한 글쓰기노동자를 꿈꾸는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한 마디에 귀 기울이며 조금씩 어른이 되었고, 깊고 낮은 한숨과 누구나 무심히 지나치는 소리를 글로 옮기며 서둘러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새 적들의 목전에

  눈물 고개 넘어 노동자의 길 걸어 한 걸음씩 딛고 왔을 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 주지 않았네

  사슬 끊고 흘러넘칠 노동 해방 이 길을

 

 삶을 다지는 기억이 된 노래. 나는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노래를 부른다. 아무도 너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다. 지금 네가 서 있는 자리는 네가 디뎌온 길의 흔적이며, 앞으로 디뎌갈 길의 방향도 모습도 너의 몫이다. ‘노동해방’의 거창한 길은 아닐지라도, 글과 노동의 무게를 느끼며 부끄럽지 않은 글쓰기노동자의 길을 한 걸음씩 밟아 가리라. 그윽하고 청아하고 유려하고 의미심장한 문장에 양심을 세우고 행간에 숨은 이야기에 정신을 새기며 담대하게 가리라.

 

 글 = 최기우 극작가

 

 ◆최기우

 전라북도 콘텐츠를 소재로 무대극 집필에 힘쓰고 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냈다. 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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