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에 산다] (17) 향기롭고 정겨운 貧者一燈…그늘진 곳 밝히는 崔仁浩씨(최인호)
[보람에 산다] (17) 향기롭고 정겨운 貧者一燈…그늘진 곳 밝히는 崔仁浩씨(최인호)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12.25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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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 어린이에 이발奉仕
익힌 솜씨 필요로 하는 이웃들위해
1회용 善心보다 값진 사랑의 行脚
넉넉한 마음으로 맺은 新婦도 동참

 전북여객 운전기사인 崔仁浩씨(최인호·27)는 지난 1987년부터 전국 7대 오지로 알려진 完州군 東上면 詞峰리의 노인과 학생들에게 이발봉사를 하고 있다.

 “무슨 거창한 포부가 있어서라거나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저 저에게 배운 기술이 있고, 그걸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을 시작했을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순박하기만 하다.

 남을 돕는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주변의 경험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는 일. 그간의 경제성장에 의해 어느정도 절대적 빈곤은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이 무감동하게 시혜적 차원에서 베푸는 일회성 자선에서 우리는 인간의 따뜻한 냄새를 맡을 없다. 그런 일은 돈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崔仁浩씨의 이웃사랑에 눈이 머물게 되는 연유이다.

 그는 동상면의 연소노인정과 산천노인정의 노인들에게 연탄과 라면, 양말 등을 선물하는가 하면 동상면의 노인과 학생들에게 이발을 해주기도 하였다. 이발을 해주게된 이유를 崔仁浩씨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안내원으로 일하던 버스가 동상면을 운행하던 3년전 그곳에 이발소도 없고 교?도 불편해 이발 한번 하려면 하루를 꼬박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예전에 배운 기술도 있고 해서 그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이발봉사는 연간 218명에 이르는 등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1988년1월4일에는 金堤군 進鳳면에 있는 고사, 효정, 정동노인정과 聖德면에 있는 나시노인정, 萬頃면의 대죽노인정을 차례로 방문하여 양말과 연탄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가 봉사활동을 하게된데는 성장과정에 스며있는 어두운 개인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1962년 鎭安군 富貴면 신정리에서 태어난 그는 일곱살 되던 해에 병마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잃어야 했다. 다시 15세에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니 3남매의 어린 소년가장으로 고생이 어떠했겠는가. 부모를 잃고 母弟(모제)와 먹고 사는 절박함속에 감추어져 있는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어린나이에 생활고를 해결할 길이 없어 동생들과 함께 문전걸식을 하기도 했다. 궁핍과 책임감속에서 모진세파와 싸워야 했던 그는 양화점과 이발소를 전전한 끝에 全北여객 안내원으로 입사하면서 생활에 안정을 찾게 된다.

 안내원 일을 하면서 틈틈이 운전기술을 익혀 1985년에 1종면허를, 1987년에는 대형1종면허를 취득하였다. 안정된 생활을 하게되자 그는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기로 했던 것이다.

 崔仁浩씨는 지난 3월 그의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해줄 주영숙씨(27)와 결혼하였다. 결혼후 이들 부부는 쉬는 날이면 동상면 산화분교와 은천노인정을 찾아 함께 이발을 해주고 있다.

 외로운 사업에 동지를 얻은 것이다. 마지못해 얼마씩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사하고는 잊어버리는 풍토속에서 자연스런 습관과도 같이 계속되는 그의 선행에서 묵묵히 자기 삶을 이웃과 나누어 가질줄 아는 보통사람의 건강한 의식을 본다.

  
 김선희 記
 김재춘 옮김
 1989년3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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