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5)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5)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2.20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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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해설> 

 이 시를 읽다보면 기도는 참 쉽네요.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라고 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기도는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기도란 잠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천천히 시간을 갖고서 성찰하는 그 순간을 바로 기도라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시에서 말하듯 기도란 만물 앞에 나의 존재를 겸허하게 낮출 때 차분해진 마음이 되어 비로소 얻게 되는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보는 것도 기도가 되겠네요. 그러면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가 될 테니까요.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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