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 망년회忘年會와 송년회送年會
[독자수필] 망년회忘年會와 송년회送年會
  • 정성수 향촌문학회장
  • 승인 2020.12.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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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연말이 되면 어떤 사람은 망년회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송년회를 한다고 한다. 망년회 또는 송년회는 가족·친지·친구들과 한 해를 보내는 연회로 매년 마지막 날 쯤에 열린다. 한 해를 뒤돌아보는 시간으로 사람들 간에 친목을 공고히 하는데 의미가 있다.

 망년회나 송년회에 참석하라는 문자를 받으면 둘 중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린다. 한자 ‘忘年會’의 ‘忘’은 ‘잊을 망忘’으로 지난 한 해를 깨끗이 잊어버리자는 뜻이다. 문제는 망년회가 일본인이 만든 모임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1,400여 년 전부터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 하여 섣달그믐께 친지들과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풍속이 있었다. 그들 풍속의 ‘망년지교忘年之交’ ‘망년지우忘年之友’에서 글자를 빌려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 하여 망년회의 뿌리가 됐다. 망년회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한 해(年)를 잊는(忘) 모임(會)이란 뜻이다.

 일본의 망년회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로 건너와 우리 풍속인 양 뿌리를 내렸다. 국어사전에도 ‘한 해를 보내며 그 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라고 올라 있을 정도다. 우리의 망년회는 유난히 극성스럽다. 특히 술만이 한 해를 떠나보낼 수 있다는 듯이 2차, 3차는 물론 급기야는 인사불성이 되기도 한다.

 이에 반하여 송년회送年會는 연말에 관공서, 회사, 학교 등 단체 혹은 가족끼리 액땜을 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모이는 것을 가리킨다. ‘送年會’에서 ‘送송’은 우리 식 표현으로 한 해를 보낸다는 의미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이는 ‘송구영신送舊迎新’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 조상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누군가에 진 금전적인 빚은 물론 마음의 빚까지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섣달 그믐날이면 수세守歲라 하여 방을 비롯해서 마루·부엌·외양간·마구간은 물론 측간까지 곳곳에 불을 밝혀놓고 조왕신(부뚜막신)의 하강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었다. 한 해를 잊어버린다는 망년회와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한다는 송년회와는 분명 다른 의미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망년회나 송년회를 기념하기 위한 술자리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행사나 사회체험을 하는 망년회와 송년회가 늘어가고 있다. 주로 저녁시간대 이뤄지는 망년회와 송년회를 아예 점심시간대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요란하게 보내기 보다는 경건하고 조용하게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왜색 짙은 망년회 문화가 사라지고 우리 전통 본연의 송년회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어 대단히 바람직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가 지고 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멀어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잘못이 자신에게 있던, 오해이든 한 해를 마감하는 순간 화해와 용서를 나누는 일은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한 해를 지나는 동안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지 않았는지, 혹시 다른 사람의 진로를 방해하지는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잊을 망忘’ 인지 ‘망할 망亡’인지 알쏭달쏭한 ‘망년회忘年會’가 아니라 반성하고 정리하는 ‘송년회送年會’이야 말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다. 잊고 싶은(忘年)일도 많지만 돌아오는 새해에는 좋은 일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저물어가는 한 해를 생각하면 후회스러운 일이 참 많다.

 
  글 = 정성수(향촌문학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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