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39> 각시풀
[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39> 각시풀
  • 윤일호 아동문학가
  • 승인 2020.12.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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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시방에 불을 켜라 각시방에 불을 켜라 신랑방에 불을 켜라 각시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신랑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1999년 3월,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진안군 동향초등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았다. 동기 셋과 처음 동향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동기 한 명이 울고 말았다. 한참 용담댐 공사를 하고 있을 때였고, 죽도로 가는 길이 너무 험해서 이렇게 가도 정말 사람사는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골짜기였다. 그렇게 발령을 받아 21명 4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그 아이들과 깊은 인연으로 6학년 때 또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해 12월에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이 축가로 불러준 노래가 바로 이 각시풀 노래였다. 사실 국악에 관심이 있던 때도 아니었고, 주마다 한 번씩 국악 선생님이 와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알려주는가 보다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결혼식 때 아이들이 축가를 불러준다기에 따로 노래를 연습했나 싶었다. 그때 아이들이 각시풀을 불렀는데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와 아직도 아이들이 불렀던 축가가 귓가에 쟁쟁하다. 그리고 운명이었는지 뒤늦게 서른 중반이 넘어 국악에 관심이 생겼고, 우연한 기회에 이 노래를 배우게 되었다. 노래를 배우면서 어린 나이에 어떤 감정으로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불렀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 또 다르게 지극히 내 감정으로 다가오니 더 특별한 노래가 되었다. 종종 술자리에서 제자들이 불러준 이야기며 내 감정을 잔뜩 담아 각시풀 노래를 부르곤 한다.

 제자들이 크면서 종종 집에 오는데 그때마다 추억 돋는 이야기를 한다. 술이 깊어지면 각시풀 노래 이야기가 나오고, 아이들이 부르는 각시풀이 아닌 내가 배운 각시풀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때를 추억하며 “우리가 뭐 알고 불렀겠어요?”한다. 그러다보면 아이들 가운데 “쌤, 결혼식 때 저 주례해주세요.”하는 말까지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알았어, 하고 허풍 가득 담긴 약속을 하곤 했는데 정말 제자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니 마흔다섯 선생에게 첫 주례를 부탁했다. 아직 주례할 때가 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며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마냥 거절할 수 없어 첫 주례를 맡게 되었다. 그날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인지 감기에, 고열에 땀을 흠뻑 흘리고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가고 말았다. 차라리 하지 말 걸,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그런데 웬걸. 한 번 주례를 하고 나니 아이들이 너도나도 주례를 서 달라고 했다. 애들이 찾아오면 거절하는 말투로 “요즘은 주례 안 하고 너희들끼리 재미나게 결혼식 하더만. 주례는 이제 유행 지났잖아.”하면 “쌤,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는 거예요?”하고 서운해 한다. 결혼이란 게 저마다 의미를 담고 있기에 마냥 거절할 수만도 없다. 그리고 주례를 서달라는 건 그 특별한 자리에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모시고 싶다는 말일 테니 더욱 거절할 수가 없는 거다.

 얼마 전 주례하던 날은 더욱 각시풀 노래가 생각이 났다. 결혼하는 제자에게 정말 불러주고 싶을 만큼. 어린 시절, 그 제자는 어려운 처지였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종종 내 차로 집에 데려다주고는 했다. 할머니는 하소연할 때가 마땅치 않으셨는지 담임인 나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 30분 넘게 통화하고는 했다. 내가 학교를 옮기고 한참 동안 연락이 없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연락이 왔고, 영정사진으로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제자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는데 어린 제자가 살아갈 삶이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결국 제자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한참 방황을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힘이었는지, 할머니 정성으로 자란 힘이었는지 어느 때보니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공부까지 마치고, 취업을 해서 멋진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결혼할 사람과 주례를 부탁하러 오던 날, 듬직한 남자친구며 철든 제자의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자랑스럽던지 흐뭇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주례를 부탁하는 제자 마음뿐만 아니라 내 마음도 따스해졌다.

 제자의 결혼식 날, 세 번째 주례이기도 하고 긴장도 별로 되지 않아 마음도 한결 가볍게 주례를 할 수 있었다. 정말 각시풀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부르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으로 제자가 잘 살아가길 응원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컸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각시풀 노래를 나에게 불러주었던 제자에게 그 노래를 선물할 수 있다면 더 특별한 자리가 될 것 같은 마음도 있다. 하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꼰대 같은 마음으로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가?

 

 글 = 윤일호 아동문학가

  

 ◆윤일호

 전북 진안에서 스무 해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고, 흙과 땀, 정을 소중히 하며 무슨 재미난 일이 없을까 아이들과 궁리하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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