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4) 신경림 시인의 ‘떠도는 자의 노래’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4) 신경림 시인의 ‘떠도는 자의 노래’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2.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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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도는 자의 노래’
 
 - 신경림 시인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해설>  

 이 시를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서 주위를 돌아보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날마다 허둥지둥 살면서 늘 어딘가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는 불안감에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좁은 골목을 서성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움일까요. 추억일까요. 아니면, 잃어버린 시간일까요. 

 저는 한때 신경림 시인의 시를 연구하면서 수 백 편의 시를 읽었지만, 이 시만큼 사람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들어 매는 시는 많지 않았습니다.

 저도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언가를 놓고 온 것 같고,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두고 온 것 같아서, 그 무언가를 찾으려 30여 년간 세상을 떠돌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떠돌기’를 쉽게 포기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눈 내리는 어느 추운 겨울날 피난길에서 그 누군가의 손을 놓쳐 버리고 나 혼자만 살아 돌아 온 것 같아서, 늘 후회와 아쉬운 심정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눈밭에 두고 온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 세상에 가서도 이 세상에 두고 온 것을 찾겠다고 헤맬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늘 뭔가를 놓쳤다는 아쉬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놓친 것이 사람인지, 사물인지, 꿈인지, 아니면 내 자신인지 몰라서, 문득 내 안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지는 않던가요. 그 울음을 듣고 화들짝 놀란 적은 없나요.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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