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First penguin)과 허들링(huddling)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과 허들링(huddling)
  •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12.10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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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BBC가 만든 자연생태 다큐멘터리 영화인 ‘원 라이프(One Life)’에는 야생동물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 중 펭귄의 삶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펭귄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삶의 지혜를 선물하고 있다.

 원래 펭귄은 겁이 많은 동물이다. 펭귄은 생존을 위해서 바다에 나가 먹이사냥을 하여야 하는데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바다에는 펭귄의 먹잇감도 많지만, 바다표범이나 범고래 같은 펭귄의 적도 많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두가 우왕좌왕할 때 용감한 펭귄 한 마리가 먹이사냥을 위해 바다에 뛰어들면 나머지 펭귄들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뒤따라 바다에 뛰어든다. 제일 먼저 바다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펭귄의 천적인 바다표범이나 범고래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펭귄 무리들 중에서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부른다. 퍼스트 펭귄은 위험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펭귄의 참여와 도전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페스트 펭귄은 현재의 불확실성에도 용감하게 도전하는 선구자를 뜻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력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기업이나 사람을 일컫는다.

 퍼스트 펭귄이라는 용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카네기멜론 대학의 컴퓨터공학과 랜디 포시 교수(Randolph Randy Pausch)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방법 (Really Achieving Your Childhood Dreams)’라는 강의제목으로 행한 마지막 수업에서 나온 말로, 사후 출간한 책 ‘마지막 강의(The Last Lecture)’를 통해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랜디 포시 교수는 이 강의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의 꿈들을 위해 노력하고 좌절하고 성취해온 과정에서 얻은 교훈들을 이야기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강조하였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학습과정이자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다.

 황제펭귄이 사는 남극의 한겨울 기온은 보통 영하 40-50이지만 최대 영하 88도까지 내려갈 때도 있고 시속 140km의 눈폭풍이 몰아친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곳을 찾아가지만 황제펭귄은 보통의 동물들과 달리 천적을 피해 가장 추운 곳을 찾아간다.

 이러한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새끼들과 알을 보존하면서 황제펭귄이 살아남는 방법은 ‘허들링(huddling)’이다. 허들링이란 추운 바람으로부터 열의 손실을 막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원형으로 겹겹이 서서, 서로에 꼭 붙어 기대는 것을 말한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찾아오면 황제펭귄들은 서식지 중앙을 향해 모인다. 서로 몸을 밀착시키고 촘촘히 포개 원을 만든다. 안쪽 대열의 펭귄은 바깥에 있는 펭귄들이 눈폭풍을 막아줘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바깥쪽 대열의 펭귄들은 영하 40도가 넘는 눈폭풍을 견디면서 체온이 떨어지고 지친다. 이때 안쪽 대열에 있던 펭귄들이 맨 바깥쪽에 있는 펭귄들과 자리를 바꾸어 서로 체온을 유지한다. 펭귄들은 4개월 동안 쉼 없이 천천히 이동하고 줄지어 품어 주면서 극심한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다.

 허들링은 상대를 원 밖으로 밀어내는 놀이를 가리킨다. 이에 반해 황제펭귄의 허들링은 반대로 추운 밖에서 따뜻한 안쪽으로 밀어 넣어준다. 황제펭귄의 허들링을 통한 생존법을 관찰한 학자들이 ‘펭귄 모델’을 개발하였다. ‘펭귄 모델’은 각자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다가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 평등하게 희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허들링을 통한 ‘펭귄 모델’은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을 피하지 않아야만 이상적으로 작동한다. 나 혼자 살아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모두를 위해 조금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며 서로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것이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칠 때 혼자 맨몸으로 바람을 맞고만 서 있다면 얼마 가지 않아 쓰러지고 말 것이다. 황제펭귄의 허들링에는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속 깊은 배려가 묻어난다.

 펭귄은 우리에게 용기와 배려를 보여준다. 퍼스트 펭귄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자로서의 용기와 도전정신을 가르쳐준다면, 황제펭귄의 허들링에서는 역경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의 배려를 보여주고 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19의 1·2차 팬데믹을 전국민의 고통분담과 방역당국의 노력 덕분에 성공적으로 통제하였지만, 조금 방심한 탓에 코로나19가 3차 팬데믹에 돌입하였다. 방역당국은 수도권의 거리두기를 2.5단계로 상향조정하였지만 3단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많다. 지금이야말로 전국민의 고통분담이 절실히 요구된다.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모임을 자제하여야 한다. 그러면 코로나19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 황제펭귄처럼.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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