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려지는 농부, 떠올리고 싶은 농부
떠올려지는 농부, 떠올리고 싶은 농부
  • 최재용 전라북도 농축산식품국장
  • 승인 2020.11.30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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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는 다들 그랬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10남매 셋째로 태어나 물려받을 것도 별로 없었기에, 결혼하여 네 자식을 키우며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공장 경비를 서며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만 했던 아버지. 그 시절 아버지가 아침에 퇴근하며 집에 들고 오시던 빵을 나는 은근히 기다리곤 했다. 철없는 아이가 커서 그것이 늦은 밤 아버지의 허기를 달래줄 먹거리였다는 걸 이해하게 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생각해보니 그때 아버지는 지금 나보다 훨씬 젊으셨다!

 어찌 우리 부모님만 그러셨을까? 그 시절 대부분이 그런 고달픈 삶을 사시지 않았을까. 장사를 해도, 농사를 지어도, 공장이나 회사에 다녀도 다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아왔던 그런 어릴적 경험과 기억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우리 의식 속에 켜켜이 쌓이게 되었고, 우리가 봤던 직업에 대한 나름의 인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농사와 농부에 대한 인식에는 고달픔이 많이 남아 있다.

 농사란 매일 새벽에 나가 해질녘까지 고된 일을 뼈빠지게 해야 하는 일, 가난하고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기 힘든 일, 못 배워 할 수밖에 없는 일, 그래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일로 흔히 여겨진다. 그러니 이런 농사일 속에 존재하는 농부 또한 애잔한 추억 속에 담겨있는 애달픈 우리 부모님으로 떠올려지는 것이다. 평균적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우리 농업에 희망이 없다. 그런 농사일을 어찌 청년들에게 권할 수가 있으며, 주변의 인식이 긍정적이지 못한데 어찌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자신감이 떨어지면 그만큼 성취도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의 농업환경은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농로 확포장, 경지정리, 비닐하우스를 거쳐 첨단 스마트팜, 드론 방제, 지능형 농기계로 대표되는 현재의 농업환경 변화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최근 희망도 보인다. 기후변화와 식량안보, 치유와 안전한 먹거리, 도시와 농촌의 상생융합문명시대 도래 등 최근 새롭게 인식되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우리 지역사회의 이슈가 되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부터 이런 안목을 갖게 되었다는 게 다행스럽고 고마운 생각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떠올려지는 농사와 농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인상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 이럴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한다. 나와 주변이 함께 바뀌어야 제대로 일이 되는 것이다. 주변이 나를 인정해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는 변화를 꺼려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 농업인 스스로 어떤 도움을 기대하고 예전부터 떠올려지던 농부에 대한 인식과 인상으로 바라봐 주길 은연중에 바랬는지도 모른다.

 농부로서 내가 키운 농작물에서 자부심을 내보이고, 소박한 농촌생활 속에서도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당당히 보여주면 좋겠다. 흙먼지 뒤집어쓰며 땀 흘려 일하고 나서는 외출할 때는 단정함이 느껴지는 농부, 부유하지 못하더라도 배우길 좋아하고, 스스로 품위를 지켜나가는 농부에게서 오히려 외경심을 느끼곤 한다.

 어느 산업이나 분야마다 나름의 이유나 목적을 갖고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고, 발전시켜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형편이 어렵고 힘들므로 지원받는 것과, 국가의 근간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에 따른 것과는 먼 훗날 결과에 큰 차이가 날것이다. 그러니 우리 농업이 국민의 건강한 삶을 뒷받침하고, 도시가 농촌과 어우러져 함께 상생발전할 수 있고,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이 된다는 관점에서 바라봐지도록 지역사회도, 행정도, 농업인도 다 같이 노력하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올해 삼락농정 대상을 수여하는 관련 조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첫 시상식도 있었다. 보람찾는 농부, 제값받는 농업, 사람찾는 농촌을 만드는데 앞장서고 귀감이 되는 분들에게 드리는 최고의 영예이다. 이를 통해 우리 지역사회가 농업농촌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가는 미래지향적 농부의 모습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세상은 꿈꾸는대로 이뤄지고, 삶은 생각대로 바뀐다.

 최재용<전라북도 농축산식품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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