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개발의 경제학
백신개발의 경제학
  • 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 승인 2020.11.26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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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위기에 출구가 있다는 신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감염병 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인 백신개발에 진전이 있기 때문이다. 백신개발은 보통 몇 년씩 걸리고, 아예 개발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개발은 몇 달 만에 상당한 효능이 입증된 사례들이 나오는 등 유례없이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적 틀을 통해 백신개발의 성공요인을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공급측면에서 보면 백신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이오사이언스 곧 생명과학 역량이다. 단지 기초과학적 역량으로만 되는 게 아니고, 과학적 성과를 환자치료로 연결하는 이전연구 (translational research) 역량이 있어야 한다. 바이오 선진국들은 이런 이전연구 역량과 경험이 풍부하다. 최근 성과가 나왔다고 발표되고 있는 백신개발에는 연구기관들 특히 글로벌제약사 연구팀들의 역량이 그 원동력이다.

 그런데 신약이든 백신이든 연구기관이나 기업에 개발능력이 있다고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속될 말로 돈이 되지 않으면 개발되지 않는다. 실제로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2-3년전부터 유럽연합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에 대비하는 백신개발 연구프로젝트를 글로벌제약사들에게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그 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인 대유행병으로 번지면서 글로벌제약사들에게 비난이 쏟아지자 이들은 긴급히 유럽정부와 공동 프로젝트를 만들어 참여했다.

 수요에서는 두가지 요소를 봐야 한다. 첫째는 절대적 필요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엄청난 인명손실을 가져오고 글로벌 경제침체를 가져오자 백신의 필요성은 분명해졌다. 둘째는 돈이 따르는 수요다. 아무리 절대적인 의미에서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돈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없으면 개발될 수 없다. 바이오텍 회사 모더나를 예로 들면, 백신개발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과 투자위험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텐데 미국정부에서 25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개발이 가능하게 되었다. 글로벌제약사인 화이자는 자체적으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성과를 내었다.

 이러한 분석의 틀을 한국상황에 대입해보자. 가장 큰 약점은 공급면에서 바이오사이언스 특히 이전연구 역량이 부족한 것이다. 수요면에서도 절대적 필요는 있으나 개발에 투자할 재원은 민간에도 정부에도 부족하다. 백신후보는 몇 개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하는 임상시험까지 끝낼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한 것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같은 감염병 사태는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특히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 감염은 큰 문제다. 그러므로 전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이다.

 한국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름길은 없다. 우선 생명과학과 이전연구 역량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정부도 재원을 투입해서 바이오 선진국들과 연구협력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야 한다.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음으로 현재의 바이오 벤처투자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제대로 된 투자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많은 신생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으나 이 중 살아남을 기업은 별로 없다. 제대로 된 시장조사도 기술선별 과정도 없이 투자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설사 기술력이 있어도 성공할 때까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하다.

 누구나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한국의 바이오 역량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제대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채수찬<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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