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인문학
삶과 죽음의 인문학
  • 김동수 시인/전라정신연구원장
  • 승인 2020.1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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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의 삶을 잘 살아야 저승길이 편안하다’고 한다. 이승과 저승, 곧 생(生)과 사(死)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기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젊은 시절을 잘 보내야 50주년 동창회에서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듯이-, 이런 의미에서 인생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는 것은 남은 생(生)을 어떻게 살아 가야 할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라고 본다.

 인생의 끝은 어디일까? 죽음일까? 아님 그 너머에 또 무슨 세계가 있는 것일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자탄한 버나드쇼의 묘비명처럼, ‘내 인생도 어느 날 그렇게 끝나고 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날이 있다. ‘죽음’은 우리 인생의 가장 큰 화두다. 한 번 돌아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는 언제나 비범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죽음을, 그림자(육체적)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적(靈的)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 과정으로 보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동시에 사라지고 만다는 유물론적 영혼 필멸설과, 육체는 사라져도 그 영혼은 연기(緣起)되어 간다고 본 영혼불멸설로 나뉘어져 있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혼불멸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서양의 고전, 단테의 『신곡(神曲)』 과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은 모두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능적 욕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 안겨 선하게 살아야 천국에 이르러 영생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2년 전에 입적하신 오현 스님은 ‘오늘 내가 점심을 대접하면 이것이 아름다운 소문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윤회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라고 말씀하신다. 이렇듯 죽음은, 궁극적으로 소멸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결과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든지 다시 윤회(輪廻)를 거듭하고 있다 말씀하셨다. 만해 한용운 스님도 그의 시 「님의 침묵」에서 ‘이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출발’이다. 그러니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며, ‘절망’이 아니고 또 다른 ‘희망’이라는 역설적 법문으로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동서양 모두 죽음은, 그게 천국이든 극락이든, 삶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의 시작이라는 생사관이다. 이처럼 우주만상이 연기와 윤회로 생멸(生滅)을 거듭하고 있으니 우리네 삶도 이러한 자연의 이 법에 따라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본다. 그래서 죽음의 문제를 기존의 관념처럼 ‘태어나서 죽어가는 생사관(生死觀)이 아니라,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사생관(死生觀)’의 순환적 싸이클로 우리의 죽음을 보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마치 한 주일의 시작이 ‘일요일’이라고 보듯(월요일이 아니라), 일 년의 시작이 ‘겨울’이라고 보듯(봄이 아니라). 그래야 이승에서 착하게 살다 극락에 태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 천당의 문(門)에도 들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죽음에 대한 매혹을 느낀다. 사는 데까지 열심히 살고, 죽음으로 걸어가는 나를 스스로 예우하며 죽고 싶다. 그동안 땀 흘리고 씻고, 음악 듣고, 아무 것도 없는 식당에서 이렇게 떠드는 즐거움을 만끽하리라. 죽음이 ’끝‘이 아니고, ‘허무’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의 열정이라고-’

 그러기에 진정 두려워야 할 것은 ‘내일의 죽음’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의 삶’에 있다. ‘인생은 그날의 꽃과 같이’(시편),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으니’(야고보서) 죽지 않은 생명은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어간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져 가는 이 ‘사생(死生)의 윤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고귀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런지? 그것이 남아 있은 우리네 삶의 과제다. 이 과제를 슬기롭게 잘 풀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은 ‘아름다운 영혼의 삶’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김동수 <시인/전라정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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