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그 후유증 안타까워
미국 대통령 선거, 그 후유증 안타까워
  •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 승인 2020.11.13 1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세계인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선거 과정에 보여준 치열한 공방전도 그랬고, 또, 선거일 전에 우편투표를 트집 잡으면서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폭탄선언도 그랬다. 개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자신이 앞서게 되자 일방적으로 선거 승리를 선언했다. 경합지역에서 바이든이 앞서자 개표 중단을 요구하고 급기야는 연방 대법원에 제소하겠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펜실베이니아 등 경합 주에서 승리하여 이미 매직넘버 270을 훨씬 넘겨 당선인으로 세계언론이 보도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여전히 승복하지 않고 있어서, 미국은 제46대 대통령 취임까지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사실 11월 3일에 실시한 선거는 정확하게 말하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인단 선거일’이다. 이 선거인단 선출을 위한 투표일은 연방헌법 제2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맨 첫 번째 월요일 다음 화요일로 정해져 있다(2016년도에는 11월 8일에 선거를 했다). 이때 뽑힌 선거인단 수는 미국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더한 숫자 538명과 같다. 상원의원은 각 주에서 2명씩 100명, 하원의원은 인구비례에 따라 최소 1명 이상에서부터 최고 55명까지 배정되어 있는데, 그 합이 바로 435명이다. 여기에다 1961년부터 컬럼비아의 특별구인 워싱턴 D.C에 배정된 하원의원 3명을 더한 수가 538명이다.

 

 그런데, 이 선거인단 선출방식은 ‘승자독식제(Winner Take All)’로, 단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부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제도다. 실제로 2000년 민주당 앨 고어 후보는 공화당의 조지 부시보다 53만 표를 더 얻었지만, 선거인단 숫자가 상대방보다 적어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2016년 힐러리 민주당 후보도 당시 트럼프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서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이 선출방식은 독립전쟁 이후 13주가 아메리카합중국이라는 연방국가를 만들면서 인구가 많든 적든 각 주(洲)는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고 합의했는데, 그 합의 정신이 연방헌법 제정과정에 반영되어 의회 구성과 대통령 선거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고 한다.

 

 ‘승자독식제(Winner Take All)’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미국은 이 방법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제도상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처럼 막말과 협박, 그리고 조롱, 불복 선언, 개표중지 요구와 연방 법원 제소와 같은 일이 예전에도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미국이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믿음은 지워야 할 것 같다.

 

 올 초부터 시작된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을 보면서 실망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모범적으로 관리해 온 나라다. 선거가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는 과정이라면 당연히 축제처럼 치러져야 할 것이다. 물론 후보자에게는 아무리 선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피 말리는 싸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선거는 국민에게는 새로운 꿈을 갖게 하는 축제여야 한다.

 

 그런데, 2020년에 우리가 경험한 미국 대통령 선거는 ‘막장 선거’라 할 만큼 짜증스러운 점이 많았다. 정책대결 중심의 선거운동은 없고, 무슨 일이든 비방하고 조롱하기에 바빴다. 후보자 TV 토론회는 막말의 대결장으로 규칙을 무시하고 거친 말싸움으로 가득 찼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필자는 그 광경을 보면서 어느 후진국의 진풍경을 보는 듯 낯설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사전투표와 우편투표를 거론하면서 선거결과에 불복하겠다는 폭탄선언도 온당치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투정하는 것도 같고, 국민을 협박하는 것도 같았다.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불복하겠다는 것은 마치 링에 오른 선수가 경기 규칙에 트집을 잡는 꼴 아닌가. 한참 개표가 진행되는데 일방적으로 자신이 이겼다고 발표하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경합지역에서 상대 후보가 역전하자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연방 법원에 제소하겠다는 발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주장에 쉽게 부응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 그가 여전히 실권(實權)을 지닌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걱정이 되었다.

 

 미국 전역에 창궐한 코로나 19는 자연스럽게 사전투표와 우편투표를 선호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다는 정략적 판단으로 개표를 중단하거나 선거결과를 왜곡한다면, 미국의 국제적 위상은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보인 억지와 궤변은 우리에게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대단한 나라다. 트럼프가 연설하면서 사실을 왜곡하자 방송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고, 공화당 쪽에서도 승복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패배한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 역사상 최악의 인물로 기록될 것 같다. 그가 보여준 경쟁방식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도 그는 완벽한 패배자다. 겸허하게 결과에 승복하여 미국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