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청자(聽者)’
윤석열의 ‘청자(聽者)’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0.11.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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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했노, 이기. 나도 군대 갔다 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았는데, 심심하면 사람한테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거 위에 사람들은 뭐 했어! 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한 게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맨들어 놔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꺼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누가 한 말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음성이 귓가에 자동재생(?)될 만큼 유명한 연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재임 당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노무현은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농담을 섞어가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당시 여론의 반응이 그리 좋지 못했다. 보수언론들은 평소 서민적이고 거침없는 용어를 쓰는 노무현의 소박함과 격정을 마땅치 않아 했고 위 연설은 비난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그들이 지적한 점은 내용이 아닌 태도였다. ‘대통령이 연설도중에 주머니에 손을 넣는 불량한 행동을 하였다’, ‘저잣거리 건달들이나 하는 말로 대통령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보수언론의 지면을 장식한 것은 말의 실체가 아닌 인간 노무현의 ‘가벼움’이었다.

 14년이 지난 현재 민주평통 연설은 자주국방과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한 대통령의 날카로운 혜안이 들어 있는 명연설이란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노무현의 말은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탈권위적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이렇듯 발화의 대상이 일반 국민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쉬운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인권변호사 시절에도 그는 노동자 집회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사람대접 받고 싶으면 노조 활동으로 구속된 노동자에 대해 의리를 지키라’고 일갈하였다. 그는 항상 서민과 노동자가 자신의 청자(聽者)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말을 ‘낮췄’다.

 재판에 나간 변호사들의 ‘청자’는 판사다. 변호사의 일은 분쟁의 실체적 진실을 결정하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외도 있다. 판사에게 말이 되지 않는 ‘떼’도 써야 하고, 자못 감정적으로 변론해야 하는 경우다. 그때의 ‘청자’는 판사가 아니라 방청석에서 변론을 지켜보는 의뢰인이다. 의뢰인의 한풀이(?)를 위해 의미 없는 말을 판사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형사재판의 말미에 피고인은 마지막 발언기회를 얻는다. 피고인은 자신이 결백하다거나 선처를 부탁한다고 호소한다. 청자는 당연히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판사다. 역시 예외도 있다. 조직폭력배 사건에서 조폭 간부는 판사에게 말한다. ‘제 후배들은 죄가 없고 전부 제 책임이니 저에게 중형을 내려달라’. 그에게 있어 청자는 같이 기소되어 옆에 있는 조직원들이다.

 국정감사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태도가 화제다. 보수언론과 지지자들은 ‘윤석열의 야성이 돌아왔다’고 환호한다. 총장의 국정감사 발언 이후 검찰 내부망에는 총장을 지지하는 검사들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은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그의 정체성을 묻는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총장인지, 조직의 수장인지 아니면 정치인인지. 그는 국정감사에서 2002년 서울중앙지검 독직폭행치사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람을 패죽인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아니 때려죽인 게 패 죽인거 아닌가’라고 재차 말했다. 이러한 태도를 볼 때 윤석열에게 정체성을 묻기보단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윤석열의 청자는 누구인가.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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