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의 안전은 곧 사회의 안전이다
구급대원의 안전은 곧 사회의 안전이다
  • 홍영근 전라북도 소방본부장
  • 승인 2020.11.08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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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주년 소방의 날, 구급대원 폭력피해 방지를 위한 제안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 1위’는 소방공무원이다. 소방을 향한 국민의 응원과 신뢰는 소방관들의 자부심이 되어 200도를 넘나드는 화재현장에 뛰어드는 힘으로 작용해 ‘국민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국민의 영웅 소방관들도 천하무적은 아니다. 다치고 상처입고 때론 뒤에서 눈물을 훔친다. 국민에겐 영웅이지만 가족들에겐 걱정거리다.

 최근 10년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소방공무원은 매년 8명에 달한다. 소방공무원의 업무 특성상 현장의 참혹함과 동료의 죽음, 출동 시 폭언·폭행 등에 반복 노출되면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것이다. 특히 119구급대원의 경우 폭언·폭행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거리의 응급실이라 불리는 구급현장에서 119구급대원들이 폭력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최근 5년간 도내에서 23명의 구급대원이 폭행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고, 가해자의 80% 이상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 생명의 존엄성을 다루는 구급대원들의 따뜻한 손길이 폭언과 폭행으로 돌아올 때 그들이 겪는 상실감과 마음의 상처는 그 어떤 상처보다 깊다.

 구급대원 폭력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소방공무원 표준작전절차(SOP)에 따르면 폭력피해가 예상될 경우 대응을 피하고 충분한 안전거리로 우선 대피해 경찰에 지원을 요청하도록 되어 있지만 좁은 구급차 내부나 긴급한 구급현장에서 충분한 안전거리로 피하기란 매우 어렵다. 구급대원 개인은 폭행을 당하지 않으려 호신술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호신술을 배우는 소방관들도 ‘상대방이 다치면 안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을 보호하려다 자칫 상대방이 다치기라도 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소방관 개인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구급대원의 폭력피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소방특별사법경찰관의 사건 조사 및 검찰 송치, 119구급차량 내 CCTV 설치, 구급대원의 웨어러블카메라 운용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폭행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아울러 법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폭언·폭행 등으로 구조·구급 활동을 방해하는 경우 소방기본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법적 처벌조항만으로 구급대원 폭행피해가 근절될 수 없다.

 다양한 노력에도 구급대원 폭행피해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구급대원에 대한 폭언·폭행이 사회안전망의 기본을 무너뜨린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급대원의 폭력피해 방지를 위해 필요한 것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소방공무원에 대한 폭행을 엄단해야 한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소방관 폭행에 따른 조치결과 구속의 비율은 5% 정도에 그치고 대부분은 벌금이나 기소유예의 조치로 마무리되었다. 소방기본법에 따라 폭언·폭행으로 소방활동을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법 조항을 강력하게 적용해야 한다. 공무집행 중인 공무원에 대해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임무에 집중할 수 있다.

 둘째, 소방관에게 폭언·폭행을 일삼는 사람은 의무적인 재발 방지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토록 해야 한다.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환자들은 주로 음주로 인한 만취상태의 환자다. 구급대원들은 술에 취한 환자를 상대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한다. 술과 폭력성이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취중 범죄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함으로써 더 큰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개선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셋째, 구급대원에 대한 폭언·폭행은 심각한 범죄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폭행피해를 당한 구급대원은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자존감이 낮아져 최상의 응급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119구급차를 이용하는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결국 구급대원을 향한 폭력은 119를 이용하는 우리 모두의 피해로 돌아오는 것이다.

 119를 이용하는 것은 수혜자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기본적인 예절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구급대원에게 행하는 폭언과 폭행은 수혜자의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11월 9일은 58주년 소방의 날이다. 구급대원들은 오늘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밤낮없이 재난현장을 뛰고 있다. 응급환자와 구급대원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재난현장과 구급차 안에서는 구급대원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하여야 한다. 구급대원들이 생명을 구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때다. 구급대원의 안전은 곧 국민과 사회의 안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홍영근 <전라북도 소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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