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0) 공광규 시인의 ‘걸림돌’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0) 공광규 시인의 ‘걸림돌’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1.0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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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림돌’ 

 - 공광규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 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 되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해설>  

 살다보면 누구나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을 겁니다. 이 시에서 걸림돌은 말 그대로 삶에서 걸림돌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서른의 나이에 걸림돌이 아니라 아득한 절벽을 만나 원수 같은 두 자식이 없었다면 순풍에 돛대를 달고 날았을 거라고 원망하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원수 같은 두 자식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견딜 수 있었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족쇄처럼 느껴졌던 두 자식이 걸림돌이 아니라 나를 세상 속으로 떠내려가지 못하게 막아준 바윗덩어리였고, 바람을 막아준 벽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이 시를 정성껏 수첩에 옮겨 적었습니다. 누군가를 자기의 울타리에 들이거나 마음 안에 둔다는 것은 이토록 힘든 일이니 아예 인연을 맺지 말자는 일종의 다짐도 섞였을 겁니다.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는 것처럼, 누구를 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식이 있는데도 몇 명씩 입양아를 들이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를 존경심이 들어 그 사람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보고 싶어집니다. 

 우리에게 걸림돌이 세상살이에서 핑계가 되고, 인생에서 안주가 되고, 추억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걸림돌과 함께 하는 하루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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