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축제에서 새로운 삶을 다짐하다
핼러윈 축제에서 새로운 삶을 다짐하다
  •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 승인 2020.11.01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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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핼러윈 Halloween 축제는 매년 모든 성인의 날 전야인 10월 31일에 열린다. 하늘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이는 고대 켈트족의 축제에서 유래하였다.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축일이다. 이는 지상과 천국 사이의 연대성도 보여준다.

 현재 축제의 모습은 1930년대 무렵의 모습이다. 그리스도교의 축일인 성인의 날 전야에 미국 전역에서 다채로운 복장을 하고 벌이는 축제다. 제각각 자기 나라의 전통적인 악령이나 귀신 캐릭터 분장을 하고 핼러윈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마침 미국 여행에서 핼러윈 축제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였다. 기괴한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에 놀랐다. 신기했었다. 귀신이 활보하고 춤을 추는 축제라니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고대 켈트족이 한 해의 마지막인 10월 31일 밤 인간 세상에 찾아오는 악령과 악마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전통 축제라고 한다.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려서 저승 영혼들을 달래고 악령을 쫓아낸다는 풍습이다.

 검은색은 어둠과 악마를 나타낸다고 하여 복장이 모두 검은색 귀신 날개를 달고 있었다. 죽음과 악마 악령 등과 관련된 축일이어서 죽음을 상징하는 유령, 해골, 검은 고양이, 거미, 박쥐 같은 분장을 하고 있었다. 또 악마, 마녀, 좀비, 드라큘라 등 소름이 끼치는 아이들의 분장에 마치 내가 마귀할멈으로 변신 된 것처럼 무서웠던 기억이 새롭다. 악령들이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 자신을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분장을 한다고 한다.

 집 집마다 입구에 주황색 호박의 속을 파내고 악마의 얼굴 모양으로 눈 코 입을 도려낸 뒤 호박 속에 촛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바구니를 들고 집 앞에 밝혀둔 ‘잭오랜턴’을 보고 과자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참 귀여웠다. 긴 줄 사이에 낀 손주들은 훗날 어른이 되어서 핼러윈 축제를 자연스럽게 접할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세상을 떠난 이들을 방문하여 이들을 기도한다. 기도하면서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조용히 묵상한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발자취에서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꿈도 아름답게 설계해보는 11월이다.

 서민층을 위한 정책이라며 재산세 인하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는 방송을 듣고 그 충격을 망령을 위해 밝혀주는 호박 속의 촛불로 녹이고 싶었다. 공시가격 기준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할지 결론을 내지 못해 중저가 1주택 재산세율 인하 방안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신문을 읽다 어지럼증이 돋았다. 9억 원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서민일까.

 코로나19 이후로 참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 하늘로 치솟는 서울 아파트값에 우린 한꺼번에 우르르 추락하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어렵게 서울에 직장을 구했다는 젊은이의 고민에 미래의 꿈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젊은이의 희망이 좌절될까 걱정된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지 석 달이 지나면서 전셋집마저 옮겨야 할 형편이라고 고민하는 젊은이의 목소리에 한숨만 쏟아진다.

 모처럼 서울 거리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나의 걸음이, 앞으로 가야 할 걸음이 옆으로 흔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바보처럼 살아온 주눅이 든 한국 사람의 모습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한국 사회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자들이 급증했다. 디지털 플랫폼의 명령에 따라 물건이나 음식을 배송하고 가사서비스를 제공하고 운전을 대신해 주는 ‘플랫폼노동자’를 ‘디지털 개수 노동자’라고 한단다. 봉제 노동자인 전태일이 세상을 뜬 지 50년이나 지난 지금 한국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치인들은 관심을 두기를 바란다. ‘1 건별 노동자’가 저축하면 쉽게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꿈을 키우는 대한민국의 주택정책이 희망 있는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왜 핼러윈 축제에 악령이나 귀신의 캐릭터 분장을 하고 대로를 활보하고 싶은가를, 왜 기이한 모습으로 아파트 숲을 거닐고 싶은가를 거울에 비춰보는 핼러윈데이였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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