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단원 김홍도는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단원 김홍도는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 김기주 기자
  • 승인 2020.11.0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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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성 서울대 인문대 미술사학과 학과장
장진성 서울대 인문대 미술사학과 학과장

 “단원 김홍도를 풍속화의 대가로 평가하는 것은 그의 가치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29일 전주 JS 호텔에서 열린 본보가 주관하는 비전창조 아카데미(CVO)에 참석, ‘단원 김홍도 신화와 진실’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강의는 하반기 비전창조 아카데미 7주차 강의로 코로나19 예방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진행됐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김홍도가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한국적인 풍속화 대가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면서 “하지만 김홍도는 풍속화만 잘 그린 화가가 아니다.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산수화, 도교와 불교 관련 그림인 도석화, 화조화, 초상화, 인물화 등 모든 그림 분야에서 빼어났던 불세출의 천재이자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김홍도의 재능이 가장 절묘하게 발현됐고 초기부터 노년기까지 줄곧 제작에 몰두하고 새로운 실험적 구도와 기법을 개발한 무대는 풍속화가 아닌 ‘병풍화’였다고 장 교수는 강조했다.

 장 교수는 “군선도, 행려풍속도, 삼공불환도 등 단원이 남긴 희대의 명작은 모두 병풍 그림이다”며 “왕실 그림이든 풍속화든 세부 그림들을 포함한 대표 장르 또한 병풍화였다”고 말했다.

 특히 김홍도는 병풍화와 풍속화를 비롯해, 당대 모든 그림 장르를 그릴 수 있었던 천재로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동아시아 화단에서 그와 대적할만한 화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장진성 서울대 인문대 미술사학과 학과장
장진성 서울대 인문대 미술사학과 학과장

 장 교수는 김홍도의 빼어난 걸작으로 그가 32세 때 그린 `군선도`를 보면 등장인물들 표정과 동작 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김홍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집안 출신도 눈여겨 봐야한다”며 “그는 도화서 화원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유력한 화원 집안들이 대대로 도화서 화원직을 세습하였다. 따라서 화원 집안 출신이 아닌 사람이 도화서에 들어가 최고 화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홍도는 하급 무관 벼슬을 지낸 중인 집안 출신임에도 불구, 쟁쟁한 도화서 화원 집안 출신 선배와 동료들을 제치고 그는 자기 능력 하나로 최고 화가로 성장했으며, 그 결과 정조가 가장 신임하고 아꼈던 화가가 됐다.

 그림과는 아무런 관련 집안 출신인 김홍도가 당대 최고 화가가 되었다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인 것이다.

 장 교수는 “특정 장르에서만 실력을 발휘했던 화가들과 달리 김홍도는 다양한 장르의 그림에 모두 정통했다”며 “건륭화원을 대표했던 서양의 퇴장과 정조 시대 도화서를 대표했던 김홍도의 등장이 1776년 전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후 18세기 후반 조선에서는 김홍도를 능가하는 화가가 없었으며 아울러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뛰어난 화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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