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9) 이경철 시인의 ‘이제 너를 돌려준다’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9) 이경철 시인의 ‘이제 너를 돌려준다’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1.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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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너를 돌려준다’
 

 - 이경철
 

 

 이제 너를 너에게 돌려준다.

 

 잔광에 부서지는 산벚나무 단풍 환장할 빛깔들도

 마른 잎 뒤척이는 귓불 시린 늦가을 바람소리도

 산 그림자 내리는 산허리 끼고 홀로 걷는 오솔길도

 높은 산 낮은 산 어깨동무 아스라한 산 능선도

 능선에 걸린 하늘 층층이 물들여오는 저 노을도

 이제 저들 각자에게 돌려준다.

 

 낮밤 일교차로 의뭉스레 피어오르는

 새벽안개도 안개에게 돌려준다.

 너를 이리저리 뒤척이다 묵정밭 되어버린

 이 내 마음도 마음에게 돌려준다.

 

 각자 흩어져 제 뿌리로 돌아가는 이 계절

 가을을 가을에게 돌려준다.

 

 이제 그리움을 그리움에게 돌려준다.

 

 <해설>  

 깊어가는 가을, 어느덧 싸늘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에 신경 쓰는 중에도 자연은 순리대로 제 길을 가고 있군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맑은 햇살 속에 단풍이 환하게 꽃피고 있습니다.  

 이 시는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네요. 능선에 걸린 하늘 층층이 물들여오는 저 노을도 이제 저들 각자에게 돌려준다고 합니다. 새벽안개도 안개에게 돌려주고, 너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묵정밭이 되어버린, 이 내 마음도 마음에게 돌려준다고 하네요. 그리고 가을을 가을에게 돌려준다고 하더니, 끝내는 이제 그리움마저도 그리움에게 돌려준다고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정말 그리움을 그리움에게 온전히 돌려줬을까요? 그리움으로 숱한 밤을 뒤척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리움의 무게를 알 듯합니다. 시인도 그리움의 무게는 차마 어쩌지 못해서 그리움을 맨 끝에다 놓지 않았을까요. 

 가을은 욕심과 아집을 내려놓고 겸허한 자세로 돌아가게 하는 사색의 계절입니다. 나뭇잎을 뒤척이게 하는 바람도, 산 그림자도, 오솔길로 내려와 기웃대는 고즈넉한 가을.

 이러한 가을을 보면서 시인은 ‘각자 흩어져 제 뿌리로 돌아가는 계절이라’고 하네요. 그리움에 지친 마음의 묵정밭에도 가을이 내려앉으면 붉게 물들겠지요. 붉은 수수밭처럼.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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