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87> 고운 최치원의 사다(謝茶)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87> 고운 최치원의 사다(謝茶)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0.10.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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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崔致遠 857~?)은 12세 어린 나이에 당나라의 유학길에 오른다. 10월에 신라를 출발하여 2월에 당에 도착했으니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힘든 길에 오른 것이다. 당시 중국 장안의 국자감은 유학 온 이들이 머물던 곳으로 고운도 이곳에서 생활하며 6년 만에 과거에 장원급제한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벼슬길에 오르기 전 그는 중국 산천을 유람하며 시를 짓고 풍물을 익히며 보낸다. 20세에 율수현위를 임명받아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게 된다. 낮은 벼슬이라 끼니 걱정은 없었으나 뜻을 펼 수 없음에 일년 후에 사직을 한다.

  율수현위 시절 그와 얽힌 쌍녀분(雙女墳)이라는 비석에 얽힌 전설이 있다. 당나라 희종 2년 어느날 초현관에 투숙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 묘지가 있어 내용을 물으니, 내용인 즉 두 자매가 강제 결혼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끊었다는 슬픈 사연이었다. 이를 듣고 위로하는 시를 최치원이 지어 올렸는데 이 시를 듣고 감동한 두 소녀가 그날 밤 최치원을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다. 중국인들에게는 이곳은 신령스러운 곳으로 지금까지도 이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고운의 시가 저승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마음을 달래주는 감동적임을 드러낸 전설이다.

  최치원은 24세에 당시 황소의 난의 토벌 책임자였던 고변을 알게 되며 고변의 종사관으로 공문을 담당한다. 이때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격문인 「토 황소격(討 黃巢檄)」을 올리게 된다. 내용 중 “ …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 땅속의 귀신까지도 너를 죽이려고 은밀히 의논하였을 것이다. 네가 비록 목숨은 붙어있다고 하지만 넋은 벌써 빠졌을 것이다. … ”라는 등의 격문을 보낸다. 이 격문을 읽은 황소가 혼비백산하여 굴러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비범한 문장력은 고운 최치원의 운명을 바꿔놓았고 황소의 난이 진압된 후에 희종에게서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 받는다.

  보통 고운 최치원을 천재라 하지만 그에게도 인백기천(人白己千)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남들이 백을 노력하는 동안 나는 천의 노력을 했다는 뜻이다. 고운의 아버지는 어린 최치원을 당나라에 보내면서 10년 안에 과거 급제를 하지 않으면 너의 아버지도 아니며 너는 나의 자식이 아니라고 한뜻에 보답하고자 한 그의 노력을 대신 한 말이다.

  그가 16년의 당나라 생활을 마무리하고 신라에 돌아와 기울어가는 신라를 위해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라는 개혁안을 건의했으나 귀족들의 이기심으로 그의 뜻은 좌절된다. 관직을 버리고 팔도를 주유하며 해인사에서 은거하다 세상을 떠난다.

  최치원의 수많은 문장 중에 「사신차상(謝新茶狀)」이라는 차와 관려 된 글이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에 수록되어 있다. 한번 감상을 해보자. “햇차에 감사하는 편지”이다.

 

  이 햇차는 촉산(蜀山)의 빼어난 기운을 받았고 수원(隋苑)에서 꽃다움을 뽐냈습니다. 

  따고 찌는 공력을 다하여 맛을 갖췄으니 초록빛 우유를 금 솥에 끓이고, 

  향기나는 기름을 옥 그릇에 띄워야 마땅할 것입니다. 

  선승을 고요히 접대하지 않는다면 신선을 한가로이 맞이할 차이거늘, 

  뜻밖의 선물이 평범한 선비에게 미치니 매림을 빌려 오지 않아도 저절로 갈증이 그치고, 

  훤초를 구하지 않아도 근심을 잊게 되었으니,

 은혜를 입음에 마음속에서 황공하고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촉(蜀)은 차나무가 자라는 땅이다. 중국의 사천성 지역으로 산세가 험하고 운무가 짙게 덮여있어 비경은 신선이나 살법한 곳이다. 이렇듯 촉의 기운을 받고 수(隨)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사람이 공력을 다해 만든 차는 신선이나 승려가 마실법한 차이지만 평범한 선비에게 왔음을 감사하는 글이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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