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민주화의 요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점차 사회가 민주화되자 제왕적 교장의 독선적인 학교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중 역사적인 계기는 노동조합의 결성일 것이다. 전교조에 대한 탄압과 대량 해직으로 엄청난 고통과 사회적 파장을 겪었지만 그로 인해 학교의 문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은 제도의 변화와 성과로 이어졌다. 단위학교 차원의 교육자치를 위한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이것이 김영삼 정부 말기 1996년부터 실시한 학교운영위원회 제도이다. 교원은 물론, 학부모, 지역주민들까지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교육 민주화에 큰 획을 그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학교 민주화가 미흡하다는 평가는 여전했다. 그러다가 진정한 학교 민주화를 위한 조례가 제정되기에 이른다. 우리 전북의 경우 ‘전라북도학교자치조례(전라북도조례 제4614호, 2019.2.1)’가 제정됐다. 학교자치조례의 핵심은 제4조에 명시된 ‘자치조직’이다. 여기에는 ‘학생회, 학부모회, 교사회, 직원회’를 둔다고 명시돼 있다.
학생회의 자치권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 교원 역시 단결권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학부모회이다. <교육기본법> 제13조는 보호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만 명시돼 있다. 2항에 ‘자녀 또는 아동의 교육에 관하여 학교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학교는 그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며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극히 제한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초중등교육법 제31조 1항에 학교운영위원회에 학부모 위원을 두도록 하고는 있지만, 학부모회와 같은 자치조직에 대한 언급은 없다.
교사회나 직원회의 의견은 수시로 학교 운영에 반영되지만 학부모의 의견은 체계적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학부모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을 수 있다. 이른바 ‘치맛바람’이라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지에서 피어난 치맛바람과 공식적으로 투명하게 활동하는 ‘학부모회’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학교가 학부모회를 귀찮은 존재나 유명무실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진정한 교육의 동반자, 협력자로 여기는 게 중요하다. 학부모는 교사와 함께 교육을 담당하는 중요한 두 축을 이룬다.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의 목표, 방향은 학부모의 동의 없이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처음에는 학부모와 교사간에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을 위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초기의 긴장관계는 머잖아 협력적인 관계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실제로 학부모 독서모임이나 합창단, 각종 스포츠모임 등을 통한 학부모의 참여가 활발한 학교일수록 학교문화가 민주적이고 교사들도 역동적이다. 이런 학교들은 당연히 민원도 적다. 민원은 불신과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와의 일상적인 소통을 통해 학부모들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는 이제 시대적 대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제화가 안 돼 있다. 조례에 의한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임의기구일 뿐이다. 그러한 이유로 교육기본법을 시급히 개정해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이 나서줄 것을 요구한다.
교육청과 학교도 학부모회가 활성화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학부모회의 구성을 정치적 선언이나 진보적 구호 정도로 인식해 제정만 하고 실제로는 무관심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 학부모회의 법제화만이 학교자치실현과 교육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서거석 <더불어교육혁신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