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30> 미워미워미워
[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30> 미워미워미워
  • 하미경 시인
  • 승인 2020.10.13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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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먹고 난 뒤 가요프로그램을 보려고 앉았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는 건넛방으로 어서 가서 공부를 하라고 하였다. 그 순간 돌덩이 하나를 가슴에 얹어놓은 듯 무거웠다. 때마침 오빠는 내 맘도 모른 채 책방에서 빌려온 소설책에 푹 빠져 있었다. 책을 읽으려고 펼쳐 놓긴 했지만 가수 조용필이 어른거렸다. 비에 젖은 풀잎처럼 가지런한 머리와 동그란 두 뺨과 반짝이며 타오르는 그의 눈빛이 책 속에 가득했다. 온통 정신을 빼앗긴 채 내가 들고 있는 책장은 넘어갈 줄 몰랐다.

  열린 문틈으로 내 귀를 번쩍 서게 만드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에 부를 가수의 이름은 조용필입니다. 어서 나오세요.’

  마치 내 이름을 부른 것처럼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버지, 공부 다 했어요.”

  “이 녀석아,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하는 거여. 어서 가서 더 공부해라.”

  아득하게 들리는 조용필의 ‘미워미워미워’는 마치 내 마음을 대신해주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쫓겨난 나의 두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저는 마음껏 돌아다니며 놀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왜 공부만 강요하세요? 아버지, 미워! 미워! 미~~워!’

  그때 나는 절실하게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다. 일 끝나고 돌아와 밥 먹고 길게 누워 텔레비전도 보고 간식도 먹는 아버지가 부러웠다. 우리 사남매는 이렇게 아버지의 통제 아래 방안퉁수로 자랐다. 밥만 먹으면 건넛방으로 몰아대는 아버지 때문에 살은 찌고 키는 참 더디게 자랐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조용필을 만나러 서울로 가자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과목 때문에 선생님이 덩달아 좋아지듯 내게 조용필이 그랬다. 노래에 빠지다 보니 요즘 말하는 ‘조용필 빠’가 되고 말았다.

  조용필 팬클럽에 가입하고 우리는 서울행 계획을 세웠다. 그날 밤 우리 집에 온 친구와 함께 응원 문구를 만들었다. 빨간 머리띠를 머리에 두르고 “오빠, 사랑해요” 도화지를 흔들며 밤늦도록 춤을 추었다. 새벽에 삶은 계란을 가방에 넣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우리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몇 발자국 못 가고 열차를 타보지도 못한 채 아버지의 두툼한 손에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때 신발 한 짝을 땅에 두들기며 “내 마음도 갈 곳 잃어 낙엽따라 헤매네”를 목놓아 불렀다.

  80년대 오빠 부대를 이끌었던 가수 조용필과 그의 노래를 나는 좋아한다. 한오백년, 창밖의 여자, 고추잠자리, 그 겨울의 찻집, 친구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미워미워미워’를 좋아한다.

  나는 왜 그의 노래를 좋아했을까? 그의 목소리에는 가슴속 열정을 끌어올려 토해내는 듯한 한(恨)이 들어있다. 어릴 적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하는 아버지가 미웠는데 그의 노래를 들으면 사이다를 마신 듯 가슴이 뻥 뚫린 시원함을 느끼곤 하였다.

  나뭇잎이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계절이다. 나는 핸드폰을 켜고 조용필의 ‘미워미워미워’를 따라 불러본다.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감정을 잡아가며….…

  “잊으라는 그 한마디 남기고 가버린 사랑했던 그 사람 미워미워미워 잊으라면 잊지요 잊으라면 잊지요 그 까짓 것 못 잊을까 봐”

  여기서 무한 반복은 강조하기 위함이고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 되기에 이렇게 바꿔서 표현해 본다.

  “절대절대 잊으라해도 못잊겠어요 잊으라해도 못잊겠어요 정말로 당신이 좋아서 죽어도 못 잊겠어요”

  아버지......! 3년 전에 내 곁을 떠나가셨다. 밥만 먹으면 방에 들어가 공부하라고 몰아넣으시더니 아버지도 뒤늦게 공부하려는지 산속 작은 방으로 들어가셨다. 물 한 컵도 직접 따라 마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만 시키시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서는 직장 일로 바쁜 내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도 하고 식탁도 윤이 나게 닦으셨다. 지금도 식탁 앞에 서면 사각 뿔테 안경을 쓴 아버지가 어른거린다.

  요즘 내 아이들 반찬을 해서 서울에 갈 때면 문득 ‘여기에 조용필이 산다는데…….’ 생각하곤 한다. 나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조용필을 직접 만나 내가 쓴 가사를 전해주고 싶다.

  아버지, 오늘 밤 제게 찾아와 잔소리해주세요. 그때처럼 건넛방에 몰아넣고 책을 보게 해주세요. 미워! 미워! 미~~워! 투정하게요.

 

 글 = 하미경 시인

 ◆하미경

 201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2014년 『동시마중』 동시 등단. 『우산 고치는 청개구리』동시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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