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4) 김두녀 시인의 ‘빛의 정釘에 맞다’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4) 김두녀 시인의 ‘빛의 정釘에 맞다’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9.27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빛의 정釘에 맞다’
 
 - 김두녀

 

 옷깃 단단히 여미고

 아파트 숲을 빠져나와 걷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은 수선스럽다

 찬바람에 길을 잃은 낙엽

 발등에 차이는데

 

 화정역 광장에 내리는 햇살

 얼음덩이 쪼아대고

 대리석 틈새로 숨어드는 물기를 좇아

 멧비둘기 날아와 목을 축인다

 혹한에 용케 살아남은

 좀처럼 달아날 줄 모르는 녀석을 두고

 참 다행이라고 홀로 웃었더니

 환하게 따라 웃던 광장

 

 한낮 햇살은 날카롭다

 단풍잎 고운 색을 벗기고

 비둘기 날개에도 내려앉아 깃털을 녹인다

 흙과 바람으로 버무려진

 내 정수리마저 따갑다

 빛의 속도는 예외가 없다

 

 <해설>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데 주변에서 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쿠쿠루쿠쿠, 쿠쿠루쿠쿠. 문득 언젠가 어느 소설가와 함께 보았던 영화 <그녀에게> 가 생각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쿠쿠루쿠쿠, 쿠쿠루쿠쿠. 비둘기같은 소리를 내봅니다. 

 쿠쿠루쿠쿠 팔로마(Cucurrucucu paloma) 이 노래는 스페인 작곡가가 멕시코를 여행하다가 그곳 원주민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을 듣고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라고 합니다. 한 여인을 사랑했던 남자가 저 세상으로 가버린 뒤에도 그 사랑을 잊지 못해 비둘기가 된 연인이 날마다 창가에 날아와 쿠쿠루쿠쿠 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가요에도‘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노래가 있듯이, 비둘기는 부화한 새끼를 키울 때 암수가 합동하여 영양제인 비둘기젖(피존밀크)이 나와 10여 일을 교대로 먹여서 키운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다정한 연인들을 비둘기로 비유 하는가 봅니다. 

 가을의 햇살은 세상을 포용하는 중저음의 첼로 연주처럼 가슴에 스며들다가, 때로는 따갑게 내리쬐어 세상의 곡식과 과일을 영글게 합니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오면 시인의 시처처럼, 우리도 얼음덩이를 쪼아 목을 축이는 비둘기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짓겠지요. 그러면 휑하니 비어버린 광장도 우리를 따라 웃어 줄까요.
 

 강민숙 시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