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뜻’ 되새기는 추석이 되기를
‘함께 사는 뜻’ 되새기는 추석이 되기를
  •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 승인 2020.09.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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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부터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비롯된 “언텍트 추석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예전에는 고향의 거리마다 귀성객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즐비했지만, 올해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들아, 안 와도 한 개도(하나도) 안 섭섭하다”라는 노모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리고, “차례는 내가 지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추석 보내라.”라는 고향 어른들의 듬직한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로 힘든 아들아, 이번 추석은 마음만 보내고 그리움은 영상으로 채우자. 사랑한다.”라는 어머니의 자상함이 엿보이는 메시지도 있다.

 

 전국이 코로나 19 팬데믹에 직면하면서 온 국민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고 생업에도 지장이 많았다.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추석 명절에도 가족이 함께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하면서 가족들이 만나지 않도록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을까.

 

 눈만 뜨면 코로나19 관련 경고와 위험을 수도 없이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던 나라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그런 상황에서도 “K 방역”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면서 비교적 잘 대처하고 있었는데, 순간의 방심으로 지난 광복절을 전후하여 하루에 300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서 한층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면서 공적, 사적 모임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추석은 우리에게 코로나 확산과 차단의 특별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추석은 ‘차례’라는 제의(祭儀)를 통하여 조상의 은덕을 되새기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화목을 도모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이 매우 엄중해서 그런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만에 하나 가족들이 고향에서 만나 서로 섞이면서 코로나 19가 광복절 전후의 확산 양상으로 무섭게 번진다면, 우리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언텍트 추석 캠페인”은 매우 의미 있는 운동이다.

 

 아무리 추석이 지닌 의미가 크고 높을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코로나 19로 인해 위협당하는 생존의 의미보다는 크지 않다.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해야 조상의 은덕도 되새길 수 있고, 가족의 화목도 도모할 수 있다. 그래서 조상들은 이런 전염병이 창궐할 때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을 죄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역병에 유행할 때에 설과 추석과 같은 명절을 생략했다는 기록을 공개했다. 조선 시대 사대부의 일기자료(초간일기, 계암일록, 청대일기 등)에 기록된 내용을 소개하면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위로해 주기도 했다.

 

 추석 등 명절이 전염병이 창궐할 때만 제한된 것은 아니다. 1996년의 추석은 강원도민에게는 최악의 명절이었다. 그 이유는 당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문이었다. 강원도 동해안으로 침입한 간첩을 소탕하기 위해서 통행금지령과 일부 산악지대 통제령이 내려지면서 검문검색이 강화되었다. 성묘 후 송이버섯을 캐던 주민이 무장공비에게 희생되면서 성묘가 금지되고 통행금지령이 강원도 전역으로 확대된 일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지금의 코로나 19 위기가 결코 당시 무장공비 침투사건보다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종교탄압”이라는 종교계의 반발이 있음에도 더욱 간절하게 대면 예배를 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선 당장의 필요나 소망을 해결하려고 하다가 집단확산의 재앙을 맞게 된다면 이것보다 큰 후회는 없을 것이다.

 

 체면이나 명분을 따질 때가 아니다. 명절 때 가족이 함께하지 못하는 일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추석에 모인 가족들이 섞이면서 코로나 확산이 가속화된다면 우리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빠질 것이다. 다소 서운하고 아쉬움이 있을지라도 온 국민이 뜻을 모은다면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추석은 내 부모와 형제를 그리워하는 ‘작은 추석’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더 큰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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