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85> 차, 역병을 치유하다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85> 차, 역병을 치유하다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0.09.2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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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차밭
중국의 차밭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차(茶)지만 과거 차나무가 재배되지 않던 지역에서 차를 맛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고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산물로 지배층과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차는 하늘이 내린 귀한 선물이었다. 차나무는 높은 산, 신선이 살법한 깊은 산속에서 자란다. 이러한 생태환경 덕분에 중국의 명차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차와 차나무에 얽힌 전설 또한 다양하다. 물론 차의 효능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남을 현대과학이 밝혀내고 있지만, 오늘은 역병을 치료한 차에 얽힌 전설을 꺼내어 보고자 한다.

  복건성 북부의 정화현에서 생산되는 명차인 백호은침(白毫銀針)에 대한 전설이다. 은처럼 희고 침처럼 곧은 형상을 하고 있어 백호은침이라 한다. 백차 계열의 차 중에서도 유난히 명성이 높은 차이다. 일반적으로 눈을 밝게하고 열을 내려주는 효능이 있어 대화증(大火症)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해에 복건성 정화 일대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고 전염병까지 만연하여 마을에는 병들고 죽는 자가 속출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질병을 치료할 명약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 나섰다. 이때 마을의 동쪽 지방에 구름과 안개에 가려진 동궁산의 용정(龍井) 옆에 선초(仙草)가 있어 이것만이 마을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결국 용감한 청년들은 선초를 구하기 위해 떠났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마을에는 지강과 지성과 막내 누이 지옥이라는 삼남매가 살았는데, 이들도 차례로 선초를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 첫째 지강은 먼저 출발하였으나 돌아오지 못하고 둘째인 지성 역시 돌아오지 못했다. 막내 누이인 지옥은 선초를 구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녀는 중간지점에서 백발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가 말하길 선초가 용정 옆에 있으니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구운 참파라는 요기할 것을 건네주고 사라진다. 지옥이 언덕에 이르렀을 때 이상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으나 참파로 귀를 막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용정에 도착한다. 그녀는 화살을 꺼내 검은 용을 죽이고 우물물을 선초에 뿌리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다. 바로 씨앗을 채취한 그녀는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선초 즙을 바위에 뿌리자 그 많은 바위가 모두 사람으로 변했다. 지강과 지성도 다시 살아났으며 이들 삼형제는 마을로 내려와 씨앗을 산비탈에 심었다. 그리고 선초 즙으로 마을 사람들의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그 잎을 채취하여 잘 말린 후 저장을 하였다고 하니 이것이 차나무이며 백호은침의 전설이다.

  젊은 청년들의 의기로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차 이야기이다. 선초를 구하기 위해 떠났지만 산속으로 가는 도중에 뒤를 돌아보아 바위가 된 청년들, 약속을 지켜 동네 청년들과 마을 사람들을 구한 지옥이라는 여성, 이 모두 평범한 동네 청년이라는 점에서 이 전설은 의미가 있다. 결국 여성이 가져온 차씨는 마을에 심어지고 차나무가 번창하여 마을을 구하게 되며 지금의 명차인 백호은침의 유래가 되었다.

  중국 역사상 걸출한 정치가이며 전략가인 제갈공명과 차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제갈공명은 맹획을 생포하기위해 서쌍판납의 남나산에 병사들을 데리고 간다. 병사들이 풍토병에 걸려 눈병을 앓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이 지팡이를 남나산 군영의 바위에 꽂자 지팡이가 차나무로 변해 푸른 찻잎이 돋아났다. 그러자 찻잎을 따서 물에 끓여 마시게 하니 병사들의 눈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후 동네 사람들은 이 차나무에서 만든 차를 공명 차라 하였고 그 산을 공명 산이라 했다.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제갈공명을 다조(茶祖)로 모시며 그의 뜻을 기린다고 한다. 차를 만들고 마시는 방법은 다양하게 변천되었지만 차는 질병의 역사와 같이 발전하여왔다. 역병을 차로 다스리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겠지만 분명한 것은 평소에 한 잔씩 즐기는 차가 생리활성기능이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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