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우리 강산 수호한 의병들을 기리며
무주- 우리 강산 수호한 의병들을 기리며
  • 이연희 수필가
  • 승인 2020.09.10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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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되짚는 전북 구국혼2 (11)

산길을 에돌아 세계태권도인의 성지 ‘태권도원’을 향했다. 수호의 무예 태권도가 무주에서 탄생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듯 태권도원은, 백운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와 물줄기가 대지를 둥글게 휘감고 돌며 태극의 모양을 이루는 산태극수태극의 형세를 이룬 길지란다. 수호와 태극의 역사를 품고 있는 땅 무주에서 사람들은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태권도의 정신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

강무경동상
강무경동상

■ 의병장 강무경과 부인 양방매의 비석 읽기

굽이굽이에 조국수호의 얼이 깃들어 호연지기가 솟아나는 땅 설천에 라제통문이 있다. 라제통문은 삼국시대에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바친 곳이며 백제와 신라를 잇는 소통의 문이기도 했다. 덕유산 자락을 휘 둘러보고 눈을 내리니 수호의 이야기가 담긴 정자와 비석이 보인다. 항일의병장 강무경과 아내 이병 양방매 부부의 추모비이다.

강무경은 무주 설천 사람이다. 침략자 일본군에 의해 을사늑약이 이뤄지자 비분강개하여 조총을 앞세운 일본군의 무력과 횡포에 맞서 싸울 것을 결심했다. 강무경은 의병 심남일과 의형제를 맺 항일투쟁에 혼신을 바쳐 영암, 남원 등지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이때 양덕관의 딸 양방매와 부부연을 맺었는데, 양방매는 “언제 무슨 변고를 당할지 모르는 남편인데,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 하며 남편과 일심동체로 의용병이 되었다.

강무경은 일본군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때 체포되어 32세의 나이에 천추의 한을 품고 절명해야 했다. 부인 양방매는 20세에 남편과 사별한 후 외로운 세월을 살다가 96세에 생을 마쳤다.
 

순국의병장 사자상
순국의병장 사자상

■ 십승지의 고장 무풍의 의병들

산세의 굴곡 영향인지 말투와 기질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무풍지역이다. 임진왜란과 조선 말기, 일제의 강압과 횡포가 심하던 시기에 이 지역의 청장년은 의병으로 일어나 구국항쟁을 일으키곤 했다. 의병장 이병렬, 이종성, 황대연의 공적비가 금평리 마곡재에 우뚝 서서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다.

세 분 모두 어렸을 적부터 의협심이 강한 성품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창의倡義의 뜻을 높이 세우고 일본군과의 싸움에 앞장섰다. “나라 없이 사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게 떳떳하다.” 하며 비장하게 싸웠다.

무풍의 후예들이 그분들의 기개와 조국수호의 정신이 천세만세 기려지기를 바라며 대덕산 자락에 ‘순국의병장사지상’을 우뚝 세웠다. 멀리 대덕산을 향한 이 분들과 의병들은 아직도 이 나라 이 강산의 태평성대를 지키는 수호신 같다. 주민들은 임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수호정신을 기리기 위해 1년에 세 차례 제례를 올린다고 한다.

문태서의병장 순국비
문태서의병장 순국비

■덕유산의 호랑이 문태서 장군이 잠든 곳

무주구천동 33경 비경이 숲길 물길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구천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니 갖가지 새소리가 청량하다. 첩첩이 선경이다. 달빛도 내려앉아 쉬어 가는 곳 월하탄을 지나간다.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의 마지막 장면을 그려낸 곳이다. 그곳에서 무주의 의병대장 문태서 장군이 덕유산의 수문장처럼 우리를 맞이한다.

문태서 장군은 재주가 많고 문리에 통달한 사람으로 총포술, 용병술에도 뛰어난 인걸이었다. 덕유산과 원통사에 주둔하며 종횡무진 활약하여 ‘덕유산 호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었다. 덕유산의 지형을 적극 활용, 뛰어난 지략으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신출귀몰하듯 오가며 500여 차례의 접전으로 일본군 1,000여 명을 무찔렀다.

1912년, 세상에는 의義와 불의不義가 공존하는 법. 일본군의 밀정에 속아 고향인 서상면에서 포박당했다. 경성으로 이송된 후 지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1913년 2월, 감옥에서 순국했다.

문태서 장군 옆에는 박춘실, 신명선, 전성범 등이 군자금과 군수물자를 모금하고 조달하여 의병들에게 공급하였다. 문태서 장군의 의병투쟁에 얽힌 일화는 일본제국의 비밀문서에 124회나 기록되어 있단다. 매년 무주문화원에서 ‘덕유산의병의 길’ 체험순례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적상산 이안 행열
적상산 이안 행열

■역사적 보물을 지켜낸 적상산사고

대한민국 지형의 한가운데가 바로 무주의 적상산이라고 한다. 그곳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의 사고가 있다. 지난해 무주문화원은 ‘조선왕조실록 적상산 사고 봉안 재연’을 통해 무주군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데 일조했다. 매년 ‘반딧불 축제’ 중에 진행 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주는 덕유산의 기운이 조국수호의 정신과 태권도원을 이루게 한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어딜 가도 즐겁고 행복한 땅 무주는 우국충정의 넋이 여전히 우리를 강건하게 지켜주는 곳이다.
 

 칠연의총, 그 넋들의 숭고한 희생 앞에서의 묵념

칠연의총의 선봉장은 단연 신명선 의병장이다. 1895년 5월에 설치된 대한제국의 시위대 소속의 무관으로 덕수궁의 경비와 호위를 담당했다. 대한제국의 시위대는 을미사변 때 일본군에게 패한 후 해산되었다. 이에 귀향한 신명선은 덕유산을 거점으로 동지를 규합하여 일제의 총칼 앞에서 애국혼을 불태웠다.

1907년, 신명선은 진안, 임실, 순창의 격전을 치렀다. 1908년에는 고창곡 옥녀봉 전투에서 승전한다. 장수주재소를 습격하여 전투기물을 획득하고 일인의 가옥 13동을 불태우고 퇴거한다. 며칠 후, 안성에서 진안수비대와 교전할 때 일인토벌대의 추격을 받아 칠연계곡 송정골에서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옥쇄한다. 이러한 항일전투기록은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1975년. 지역민들이 칠연계곡 병막골에 흩어져 있던 의병들의 숱한 유해를 거두어 송정골에 안치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의병들의 합장묘소의 명칭은 ‘칠연의총’이다.

이연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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