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클린 뒤 프레
재클린 뒤 프레
  • 안성덕 시인
  • 승인 2020.08.25 17: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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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24>

잿빛 하늘이 기어이 참고 있던 눈물을 떨구기 시작한다. “삶을 어떻게 견뎌야 하느냐”며 말년을 다발성 경화증으로 살다간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의 음반을 고른다. 턴테이블에 얹고 먼지를 닦아낸다.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이 빗물처럼 흐른다.

 

 즐겁고 기쁠 때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는 외롭거나 슬플 때도 음악과 함께하곤 한다. 일상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음악, 어떤 음악을 즐기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클래식, 재즈, 팝, 트로트, 국악 등 장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불어 좋아하는 음악을 어떤 기기, 어떤 음원으로 어떻게 재생시키느냐 하는 것도 개인적인 취향이리라. 왜, 하이엔드라 불리는 고급 오디오로 듣는 음악보다 어느 날은 자동차에서 듣는 유행가 한 소절이 가슴 저 깊은 곳을 건드릴 때도 있지 않던가.

 나는 LP 음반을 유독 좋아한다. 어떤 이는 번거롭게 아날로그를 고집한다며 핀잔을 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일리 있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LP 음반으로 재생시키는 음악은 스크래치 잡음도 있으며, 음반의 먼지도 닦아야 하고, 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등 일련의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더군다나 간편하고 반영구적이며 재생시간도 훨씬 긴 CD의 출현으로 LP 음반의 생산이 중단된 지도 이미 오래전 일이지 않은가.

 

 첼리스트 토마스 베르너가 비운의 ‘재클린 뒤 프레’를 위해 이름 붙인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이 끝났다.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이어 듣는다. (e-minor op-85 재클린 뒤 프레 vc, 존 바비롤리 경 지휘, 런던심포니 orch)

 

 개인적 취향에 따라 의견이 분분한 터라, CD(compact disk)와 LP(long play) 음반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LP 음반의 다이내믹 레인지는 소리의 깊이에서 느껴지는 감동이고, CD에서의 감흥은 분명 소리의 깊이보다는 폭넓은 명징한 아름다움이라는 평에 동의한다. 빠르고 간편한 것만 추구하는 시대에 역행하며 내가 LP 음반을 고집하는 이유는, CD에서 느끼지 못하는 깊은 소리의 질감과 적당한(?) 기계음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게 하고, 또 향수에 젖게 하기 때문이다. 손칼국수와 기계 칼국수의 차이 같은 것 때문이다. LP 음반으로 재생되는 음악에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분명 있다. 또 LP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음반을 고르고, 재킷을 열고, 먼지를 닦아내고, 턴테이블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카트리지를 얹는 그 일련의 과정까지도 즐기는 일이다. 재킷의 그림 감상은 물론 덤이다.

  에디슨 축음기의 SP(standard play) 음반에 이어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별표 전축’, ‘독수리 전축’, ‘에로이카’, ‘인켈’과 월남 파병 용사들이 가지고 온 일명 ‘야전’(야외전축)이라 불렸던 포터블 오디오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하던 LP 음반은, 1982년에 새로운 음원인 CD의 출현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급기야 2004년 6월 우리나라 마지막 LP 음반 공장인 서라벌레코드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요즘 들어 일부 희귀 LP 음반이 수십, 수백만 원을 상회하는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생산이 중단된 음반을 구하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긴 하겠지만, 음반을 음악 자체가 아닌 골동품쯤으로 생각하는 것만 같아서 일면 씁쓸하기도 하다.

 아직껏 LP 음반에 진공관 오디오를 고집하고 있으니, 나는 분명 아날로그 형 인간이다. 지난 세월을 함께해 온 LP 음반이 이천 장쯤 있다. 이사 때마다 아내에게 핀잔을 듣곤 하지만 내겐 보물 1호다.

 

 파블로 카살스가 눈물을 흘렸다는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 3악장 아다지오로 이어진다. 역시 ‘재클린 뒤 프레’다. 재능 많은 사람은 신이 일찍 데려가신다지 않던가? 비는 그칠 기미도 없다.

 

 글 = 안성덕 시인

 ◆안성덕 

 전북 정읍 출생. 시집 《몸붓》, 《달달한 쓴맛》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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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담 2021-10-30 17:04:24
첼로소리같은 가을날입니다 .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에 재클린눈물을 들으며 ...신문에서 이렇게 귀한 글을 읽게 되어 기쁩니다.